소휴당을 구입한 지 맞는 세번째 봄이다.
녹차밭이 꽤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잘라주기만 하고
작년에는 고랑을 검은 천으로 다 덮어두었는데도 점점 풀밭이 되어 가고 있다.
봄이 되어 새순이 나오면
'녹차나 한 번 만들어볼까?'
생각은 들었지만 돈 주고 체험만 해 봤지 처음부터 끝까지 해 본 적은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마침 함께 공부하는 모임의 선생님 한 분이 만들 수 있다 하여 그 분을 사부로 모시고
부처님 오신 날로 시간을 잡았다.
녹차는 이른 시간에 따야 한다는 말에 8시반부터 녹차잎을 따기 시작했으나
이미 해는 중천이다. 허리에 보따리 하나씩 둘러서 묶고 따기 시작!
차나무는 마사토 토질의 산에 심어야 차의 맛과 향이 좋다. 황토밭이나 논밭에서 채취한 차는 싱겁고 향이 덜하다. 암반층에 심으면 더욱 좋다. 크고 작은 나무숲과 대숲은 적당히 반 그늘을 만들어 차나무들이 싱싱하며 부드럽고 향과 맛이 뛰어난 찻잎이 나게 한다. <차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
우리 집은 동향의 적당한 경사가 있는 산의 초입이라 녹차가 자라기에는 이상적이나 산그림자가 생기는 오후 4시까지는 땡볕이다. 하긴 녹차밭으로 유명한 대한다원도 그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녹차의 고장 보성은 녹차밭이 참 많다. 지금도 200여개 이상 운영된다고 한다.
우리 옆에 관리하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녹차밭이 있다.
덥기도 하여 그늘을 찾아 이곳으로 왔더니 칡 덩쿨로 덮인, 나보다도 키가 훨씬 큰 녹차나무에서 자란
어린 잎들이 연하고 부드러웠다.
차나무는 반그늘에서 자란 것이 좋다. 땡볕에서 자란 차는 수분이 적어 찻잎이 쇠어 버리기 쉬우며, 잎이 뻣뻣하여 많이 덖고 비빌 수가 없으며 떫은 맛이 강하다. 너무 응달진 곳은 찻잎이 적게 나오며 차의 풍미가 덜한다. 반그늘의 찻잎은 수분 함유량이 적당하여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차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 98쪽>
2명은 우리 밭에서, 3명은 이 곳에서 두 시간 동안 녹차잎을 땄다.
창처럼 생긴 뽀족한 창 하나와 두 개의 잎, 즉 일창이기로 끊어야 한다.
겨울을 뚫고 나온 연한 새싹이 어찌나 고운지 저절로 명상의 시간이 되었다.
정갈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차를 만들어야 차 맛이 좋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찻잎은 입하는 전후하여 따는 게 좋다. 일창이기의 시기에 맞추어 잎을 따는 게 좋다. 너무 어린 찻잎은 여러 번 덖고 비빌 수가 없어서 차맛과 차의 성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차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99쪽>
'녹차 만드는 놀이'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기에 양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으나 만족!
녹차 만든다고 새로 구입한 작은 멍석 두 개에 펼쳐 놓으니 이쁘다.
뭔가를 새로 하려니 드는 품이 많다.
멍석도 두 개 구입, 볶는 후라이팬도 새로 구입(녹차전용팬이어야 해서), 은박 포장지와 눌러서 찝는 기계까지...이것 저것 필요한 준비물을 구입했다. 올해 한 번만 만들고 사장시키기에는 아깝네...
차는 고온에서 덖어야만 차맛이 제대로 난다. 저온에서 덖을 경우 찻잎이 충분히 익지 못하여 맛이 비릿하고 쉽게 변질이 되므로 완전 밀폐하여야 하며 봉지를 뜯어 두면 차가 희뿌옇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차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 99쪽>
준비한 후라이팬을 고온으로 맞춘 후 녹차잎을 살청했다.
살청은 신선한 잎의 산화효소 활성을 파괴하고 녹차의 적절한 색깔과 향, 냄새와 맛을 얻는 과정이다.
또 신선한 잎에 있는 물의 일부를 증발시켜 잎을 부드럽게 한다.
온도를 최대한으로 높였기에 장갑 두 개를 겹쳐 끼고 적당히 풀이 죽을 때까지
뒤집기를 반복한다.
두번째는 유념의 과정이다.
멍석에 뜨거운 녹차잎을 쏟은 후 비비는 과정이다.
이는 모양을 단단하고 만드는 것으로, 잎 조직은 파괴하여 차를 우려 낼 때 차의 품질을 높이는 과정이다.
같은 방향으로 밀때는 힘을 주고, 당길 때는 힘을 적게 준다.
간혹은 말린 것을 펼쳐서 턴 후 다시 모아서 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는 서로 겹치지 않도록 펼쳐서 건조한다.
그동안 후라이팬에서는 다른 녹차를 살청하고 있다.
모두 3군데로 나눠서 9번 정도 살청과 유념 건조를 반복해서 만든 최종 완성품이다.
덖음차 만드는 방버블 일러 '구증구포'라는 말을 쓴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은 가마솥에 찌고 아홉 번은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
생약제를 건약제로 만들 때 쓰는 전래의 제약법이다.
찻잎이나 생야채가 가지고 있는 수분으로 뜨거운 솥에 넣어 볶아 익히는 것을 덖는다고 한다.
솥에 생엽을 넣고 눌지 않게 재빠르게 뒤적거리며 골고루 익힌다.
익힌 다음 솥에서 꺼내 멍석 위에 놓고 한 김 내보내고 한쪽 방향으로 고루 비빈다.
이 비비는 과정에서 잎이 말려 차의 모양이 갖추어지고 찻잎에 작은 상처를 주어 차를 우릴 때 잘 우러나도록 한다.
잘 비벼서 얇게 펴 넣어 찻잎을 식힌다.
아침부터 서두른 탓인지 오후 1시 정도가 되어 끝났다.
광목 위에 펼쳐두고 보니 그럴 듯 하다.
텃밭에서 나온 상추와 치커리, 부추와 흰민들레잎, 케일을 뜯어
봄바람 부는 평상에 앉아서 삼겹살에 키조개, 전복을 구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바깥에서 먹는 점심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녹차를 시음해 봤다.
여러 번 덖어서 그런지 맛이 그럴 듯하고 특별하다.
차를 우려 내는 횟수는 차를 만들 때 덖고 비빈 횟수과 비례한다고 한다.
떨어지는 가루 하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차는 달고 맛났다.
직접 해 보니 알겠다.
시중에서 사 먹는 녹차가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긴 시중 대부분의 녹차는 기계로 잎을 베고 많은 부분을 기계에 의지하여 만든다고 하니
오늘 우리가 만든 녹차에 댈 것이 아니다. ㅎㅎㅎ
차나무의 서장이 늦어지고 찻잎의 생산량이 적더라도 비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지근이 퇴화되므로 차나무의 자생력을 막으며 아질산염이 많은 차가 된다. 또한 차를 만들 때 비료 성분이 화화적 반응을 일으켜 솥 밑이 눌게 되며 차를 비빌 때 거품이 생기기도 한다.<차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 98쪽>
최종 완성품은 정확히 열 개다.
한나절의 노동력과 집중도, 들인 공력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양이나
내가 우리 집 녹차잎을 이용하여 만든 첫번째 제품이라는 데 보람이 있다.
뿌듯하기가 이루말할 수가 없다.
녹차밭이 300평 이상 되는 밭을 구입하면서 언젠가는 한 번은 만들어봐야지 했었다.
좋은 사람들과 4월 마지막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잘 놀았다.
기회가 되면 장흥에서 만드는 떡차, 청태전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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