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장편 소설 [파친코]를 읽고

 

영화 파친코가 애플 TV로 방영된다기에 궁금했는데 딸아이가 그러는 거다.

"엄마, 영화보기 전에 소설로 보면 더 재미있대요."

마침 지인의 사무실에 가니 미처 읽지 못한 새 책으로 두 권이 놓여있었다.

지인은 아직 읽지도 않은 새 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한 권은 밤 11시경에 읽기 시작하여 새벽 4시까지.

-후유증이 컸다. 재밌으면 끝까지 읽어 버리는 독서습관은 정말 나쁜 버릇이다. 낮에는 헤롱헤롱-

또 한 권은 이틀에 걸쳐 나눠 읽었다.

그래놓고 보니 그냥 넘어가기 서운하여 완성도 떨어질 지언정 이 순간의 감회를 기록한다.

 

[파친코]를 쓴 사람은 미국인이다.

원래 이 쪽에 관심이 있어서 짧은 단편소설 형식으로 발표했었는데 남편은 따라 가서 일본에 4년동안 살면서 본격적으로 취재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이 쓴 작품을 살펴보니 상당히 엉터리였다는 고백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조총련이라는 이름을 들어보긴 했으나 남한보다는 북한에 더 가깝다는 선입견으로 호감을 가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소설을 읽고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않은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이니치(재일동포)의 삶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 편의 소설이 주는 울림이 묵직하다. 

 

양진-그의 딸 선자-그녀의 아들인 노엘과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까지 4대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소설이 어찌나 잘 팔리는지 어제 출장길에 만난 선생님은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기에 결국 구매를 취소했단다. 블러그나 기사에서 많이 언급되었듯이 4대의 이야기라서 각각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어떤 글도 참고하지 않은 순수한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 둔다.

 

소설은 1910년대부터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시작으로 너무나 어려운 시절. 부산 영도다리에서 남의 집을 빌려 하숙집을 운영하는 양진. 그녀는 입 하나 덜 욕심으로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언청이에다 절름방이인 훈이에게 시집한다. 몸은 불편하지만 사랑받고 사는 그녀. 두 아이를 잃고 어렵게 얻은 선자를 애지중지 귀하게 키운다. 그녀의 하숙집은 말이 하숙집이지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으리만큼 비좁은 곳이다. 그러나 양진이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하숙비를 올리지도 않은 채 텃밭에 푸성귀를 가꾸며 하숙집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며 살아간다.

 

그의 딸 선자는 어느 날 시장 다녀오는 길에 일본인 어린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며칠 전부터 선자 주변을 맴돌던 한수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구해준다. 이를 계기로 선자와 한수는 부쩍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잠을 자게 된다. 선자는 임신하고 그 소리를 들은 한수는 기뻐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일본인 처에 세 딸까지 있는 상황. 한수는 선자에게 현지처가 되어 아들을 낳아 주기를 기대하지만 선자는 그가 유부남인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임신한 선자를 두고 고민하는 양진의 모습을 마침 결핵에 들어 죽을뻔하다가 양진, 선자 모녀의 극진한 간호로 살아나게 된 백이삭이 알게 되고 자신이 선자와 결혼하여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법도로도 처녀가 애를 배면 어떤 손가락질을 받을지 눈에 보이기에 양진은 결국 이삭과 선자를 결혼시킨다. 몸이 나은 이삭은 형 요셉의 초청으로 오사카를 가던 길이기에 선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비록 빈민촌이지만 요셉와 그의 처 경희는 집도 있고, 동생 내외를 끔찍하게 아낀다. 노아(선자와 한수 사이에서 낳은 아들)가 태어나자 가정은 더 화목하게 되고, 요셉은 일본인 공장에서 기술자로, 이삭도 작은 교회로 부임하게 되어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이삭은 자기 아들이 아니지만 노아를 차별없이 사랑하고, 선자와의 사이에서 모자수라는 아들도 낳는다. 그러나 교회 직원이 신사참배할 때 주기도문을 외웠다는 이유로 모자수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이삭이 감옥에 가게 되면서 집안은 다시 바람이 분다. 이삭의 옥바라지와 생활비로 돈이 필요해지자, 경희와 선자는 부끄러움과 멸시를 무릅쓰고 김치를 담궈 팔게 된다. 인근 불고기 집에서 김치를 정기적으로 납품하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 간다. 소식조차 없던 선자의 남편 이삭은 2년 넘게 옥에 갇혀 지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가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른다. 태평양 전쟁이 극에 이르자 선자가 일하던 식당의 밥그릇과 숟가락 등의 공출이 시작되고, 식당은 문을 닫게 되는데 그때 한수가 선자 앞에 나타나면서 1부가 끝난다.

 

사귀는 동안 한수는 선자에게 선물을 주는데 그건 고가의 시계였다. 이삭을 불러들이면서 고리대금업을 쓰게 된 요셉이 빚독촉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된 선자가 그 물건을 팔게 되고, 그 물건이 다시 오사카와 한국을 오가며 사업으로 성공한 한수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한수는 일찌감치 선자가 오사카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선자는 한수의 도움으로 전쟁 막바지에 오사카를 피해 시골 헛간에서 농사를 도우며 살게 된다. 요셉은 나가사키에 기술자로 갔다가 원자폭탄 투하로 상처를 입게 되고, 이후에는 집안의 우환이자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된다. 한수와 선자의 아들 노아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며 영리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학교폭력의 대상이 된다. 그는 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신이 일본인기를 꿈꾼다. 일본인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와사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지만 자신의 입고 묵는 모든 돈이 한수에게서 나온 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학교를 마치지도 않고 떠나 버린다.

 

모자수는 형 노아와는 달리 학교 공부에 취미가 없다.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하는 모든 이를 들이받아 버린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렇듯이 마음씨는 비단이다. 결국 그 점을 좋게 본 '고로'라는 한국인의 눈에 띄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다. 파친코는 사기 도박으로 칭하며 그 일로 밥 먹어 먹는 자체를 깔보고 무시한다. 야쿠자와 결탁했다고 여긴다.  학벌이 있어도, 돈이 있어도 한국인 자체를 멸시의 대상으로 보는 일본 사회에서는 어느 것에도 나설 수 없는 재일동포가 막바른 골목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이 바로 파친코였던 거다. 모자수는 타고난 성실과 정직으로 곧 이 업계에서도 선두에 서게 되고 많은 돈을 벌게 된다.

 

8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한수는 노아가 어디있는지 알게 되고, 선자와 찾아간다. 그 사이 노아는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세 딸도 낳고 단란하게 살아간다. 그의 주변에서는 노아를 모두 일본인으로 알고 있다. 선자가 찾아감으로써 노아가 조선인이라는 게 탄로나서일까. 결국 노아는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생물학적인 아버지 한수를 미워하여 그의 돈을 쓸 수 없었던 노아,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아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이 충격이었다. 

 

모자수는 아내와 사랑하며 알콩달콩 살지만 그의 아내 유미는 교통사고로 어린 솔로몬을 남기고 사망한다. 그때부터 솔로몬은 선자와 살게 되고, 아쉬울 것 없이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가고 재미교포인 피비도 사귄다. 피비와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솔로몬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또 믿었던 일본인 상사로부터 이용한 당한채 공들여 일하던 회사에서도 내팽겨쳐진다. 결국 토사구팽 당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솔로몬은 일본어도 영어도 유창하게 하지만 일본 땅에서는 자신이 발디딜 곳이 없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 받는다.

 

자신 삶을 충실하게, 너무나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다. 가슴아픈 부분도 많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재일교포의 삶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순천에도 재일교포가 세운 고등학교가 있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그분들의 선행이 어떤 배경하에 이루어졌는지 소설 한 편으로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대단한 소설이라고 치켜 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치밀한 구성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음날 직장에서 힘들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내가 밤새워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그 유한함이 멀지 않았기에 그러고 싶을 때 기꺼이 나는 날밤을 꼬박 새고서라도 소설을 읽으리라. 

 

'내가 읽은 책 > 삶과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여름밤의 해프닝!  (0) 2018.07.24
20180401 봄날  (0) 2018.04.01
이쁜 내 새끼 밤하늘  (0) 2017.04.09
아들아, 미안해!  (0) 2016.05.17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우리 학교  (0) 201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