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90년 된 할아버지 학교입니다. 꽤 나이가 많은 학교지요? 현재 전교생은 39명, 3년 전만 해도 59명 이었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줄어가다 보면 과연 백 살 생일을 셀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오래된 학교답게 부지가 넓습니다. 학교 옆에도 뒤에도 노는 땅이 많습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영객송’ 못지않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도 있고, 20미터 넘는 키를 자랑하는 나무도 수 십그루에 이릅니다. 가을이면 노랗게 열매를 매단 모과나무도, 바닷가에 위치한 학교답게 유자나무도 몇 그루 있지요. 탱자나무는 학교 뒤에 있습니다. 탱자나무와 어린 대나무가 체육관 앞에서 바깥 울타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탱자꽃 사진을 찍어 보여 주었더니 누군 그러더군요. 탱자나무에도 꽃이 피느냐고요. 네, 탱자나무에도 예쁜 꽃이 핍니다. 가시 박힌 그 몸 어느 곳에 이런 귀한 꽃을 숨겨 두었을까요? 순백의 다섯 장 꽃잎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하얀 팝콘 매단 것처럼 부풀어있는 꽃봉오리는 또 얼마나 신비로운지요? 아직은 잎도 나지 않았는데 가시를 뚫고 나온 이 아름다운 꽃잎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김용택 시인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선숙이네 집> 이야기에는 그 울타리 너머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는데 요샌 탱자나무 보기가 귀해선지 제게는 그런 추억은 없습니다. 단지 어렸을 때 할머니와 얽힌 기억은 떠오릅니다. 내 바로 밑 남동생은 눈이 충혈되고 자주 아팠습니다. 가까운 곳에 안과 하나 없던 그 시절 할머니는 잠에 취한 동생을 새벽마다 깨워 집과 떨어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유당공원으로 갔습니다. 해가 뜨는 방향을 보고 어찌어찌 하면 눈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어 자주 의식(?)을 행했습니다. 단순히 민간신앙이라고 무시하기에는 손자 생각하는 할머니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저리 예쁜 꽃이 피는 탱자나무가 왜 열매는 그리도 시고, 쓰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탱자를 달게 되는 걸까요? 탱자는 귤, 유자와 같은 과인데, 대접은 영 다르네요. 귤화위지 橘化爲枳 [귤 귤/화할 화/될 위/탱자 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귤이 탱자가 되다. 강남에 있는 유자를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 즉 주위 환경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것을 이를 때 쓰는 말입니다.
주위 환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경제적인 면도 있고, 주변 친구나 지인, 가족, 접하는 대상에 따른 것일 수도 있을테고, 자연풍광이나 지역의 특성도 해당되겠네요. 아마도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으로 인한 환경이겠지요.
나는 주위 사람에게 유자 역할을 하는가, 행여 탱자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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