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집에 왔다. 나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영물인 고양이가 주인에게 해꼬지한다거나, 길고양이가 떼를 지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탓도 있고 친정어머니가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고양이라서 은연 중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한때 추리소설을 엄청 좋아하여 읽었지만 애드거앨런 포의 대표소설인 고양이 관련 소설은 읽지 못했다. 꿈에 고양이를 볼까 무서워서......
그런데 지금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퇴근 후면 고양이 배변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 고양이의 뒤처리를 해 주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하나다. 고양이는 아들이 데려왔다.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중국여행을 기획한 아들이 평소에 자취방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가지고 내려온 게 발단이었다. 일주일 정도 머물던 아들은 자기가 고양이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양이가 얼마나 이쁜 짓을 많이 하는 지를 설명하며 키워주기를 부탁했다. 첫 날 고양이가 온지를 모르고 집에 왔다가 발 뒤꿈치 부분에서 아는 체 하는 고양이 덕분에 간 떨어질 뻔 했다.
이후로도 슬슬 고양이 없는 곳을 피해 다녔다. 틈만 나면 고양이를 방에 가두라고 잔소리를 했다. 덩치는 호랑이만 한데다(적어도 내 눈에는 그리 보였다)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색깔이나 생김이 고고하고 이쁜 것도 아닌 그냥 덩치만 커서 평소에 내가 무서워서 잘 쳐다보지도 못하던 동네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고양이였다. 색깔은 또 어떤가?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그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얼룩덜룩하지만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많은 검은 고양이였다. 그나마 딱 하나 맘에 드는 것이라고는 이름이었다. 성은 밤이요, 이름은 하늘이, 즉 “밤하늘”이란다.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 아주 낭만적인 이름이다.
고양이가 온 이튿날, 밤하늘을 안고 있던 아들이 나에게 쓰다듬어 보기를 권했다. 거절했더니 “엄마는 너무해!” 한다. 상처받은 얼굴이었지만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셋째날에는 안아보기를 권했다. 역시 거절했다. 너 여행 가고 나면 슬며시 현관문 열어놓겠다고 말로 고양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많이 서운해 했지만 내게 있어 고양이는 함께 사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무서운 동물, 딱 그것에 불과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여, 아들은 고양이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중국 여행길로 떠났다. 오로지 우리 부부 책임하에 고양이는 놓인 것이다. 처음처럼 피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고양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아침이면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밤에 퇴근하여 오면 배변통을 정리하는 일상이 이어지길 사나흘 정도. 그 사이 우리 부분은 주인 떠나고 이뻐해 줄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 아파트를 지키는 이 녀석을 애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라도 들리면 쇼파 저 쪽 끝에 있다가도 현관 문 가까이로 뛰어와서 귀 쫑긋거리는 게 귀여웠다. 주인 떠난 줄도 모르고 낯선 집에 남겨진 이 녀석에 감정이입이 되어 짠한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완전히 가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퀴퀴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기어이 하늘이가 일을 저질렀구나. 내 이럴 줄 알았어. 사연인 즉 먼저 퇴근한 남편이 집에 들어오니 하늘이가 안방에 갇혀서 계속 울더란다. 낮에 일이 있어 들른 친정엄마가 안방 옷걸이 아래숨어 있던 고양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안방문을 닫아 놓고 가셔서 고양이가 갇힌 것이다. 배변통이 있는 방에도, 먹이와 물이 있는 거실과도 단절된 채 반나절을 보낸 것이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는 보다 더 실체감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침대 위, 이불 위, 바닥 이곳 저곳을 큼큼거리고 다녔으나 냄새의 근원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분명 불쾌한 냄새는 나는데, 이상하다....그러다가 발견했다. 안방 화장실 양변기 옆 바닥에 놓인 배변의 흔적을.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집에서 산 지 불과 10여일, 어찌 알고 화장실에다 배변을 했을까. 한낱 미물인 줄만 알았는데.....구박했던 만큼 감동도 컸다. 그래, 오늘부터 너는 이 집에 살 자격이 충분해. 똑똑한 하늘이. 오늘부터 너를 가족으로 인정해 주겠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손바닥 뒤집듯 이렇게 쉽다. 태산보다 크고 무거운 <마음>만 고쳐 먹을 수 있으면.....그 마음이 움직인 이후의 고양이는 정말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 털 빠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그동안 고장났으나 사지 않았던 청소기를 새로 사서 해결하였다. 청소도 이전보다 더 자주 한다. 한 번이라도 더 자주 품에 안고 쓰다듬어 보려고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는 하늘이는 아침에 뒤척이는 기척이 보이면 그르렁 거리며 배 위로 올라와 이불 밖으로 내놓은 내 손바닥 아래로 자꾸만 머리를 디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조른다. 어린아이 하나를 키우는 듯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수고로움을 즐겁게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화분 위에 올라가 앉아있기, 그러다가 심심하면 화분 타고 놀며 흔들어서 나무 가지 말라죽게 하기, 이 화분 저 화분 옮겨 다니면서 흙과 돌멩이 거실 바닥에 몽땅 떨어뜨려 놓기, 가족사진 놓인 장식장 위까지 올라가서 액자 떨어뜨려 깨기, 피아노 위 인형 바닥에 떨어뜨리기, 겨울 카펫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어 올 풀리게 해 놓기, 화장지 발톱으로 긁어 구멍내 놓기 등 녀석의 비행은 끝이 없다. 이쁘다고 쓰다듬을라 치면 배를 하늘로 내놓고 장난치는 바람에 남편과 내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곤 한다.
그럼에도 ‘집사’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털이 좀 날리면 어때? 키우는 아이도 없는데 합리화를 시키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신발 벗는 현관까지 달려오는 ‘하늘이’를 마중하고, 행여 보이지 않으면 ‘하늘아, 하늘아’를 외치는 우리 부부. 간혹 산책길에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눈살을 찌푸리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 보기 전에는 나의 잣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걸 고양이를 통해 다시 배우게 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정 붙이기 나름이라는 것도. ‘정’을 들이는 것도, 떼어내는 것도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앞에는 이름을, 뒷면에는 <이쁜 내 새끼 밤하늘>이라는 글귀와 내 전화번호가 적힌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하늘이가 또 사고쳤나 보다. 우당탕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이, 너 이녀석!"
- 거실 다탁 위에 냉큼 올라가 있는 하늘이, 이 다탁이 놀이터 된 지 이미 오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행기, 유모차, 장난감 등의 아이 물건이 하나 둘 쌓이는 것처럼 우리 집에는 고양이 놀이터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
- 의젓하게 이름표를 달고 다탁 위에 자리 잡은 하늘이, 뭐든지 지 마음대로다. 내가 안아 주고 싶어도 지가 싫으면 절대로 오지 않는 까칠한 하늘이다. 순 지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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