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가족 사진을 찍고 왔다. 인터넷 검색을 하여 멀리 광주까지 가서 찍었다. 누구에게 소개받아 왔는냐는 직원의 말에 인터넷 평이 좋아 왔다고 했더니 신기하게 쳐다본다. 인터넷세대인 딸아이가 아니라 쉰세대에 속하는 엄마가 그런 식으로 검색하여 온 적은 드문 모양이다.
대학 들어간 지 3년만에 처음으로 양복을 입은 아들도, 검정원피스로 맞춰입은 딸 아이 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어느새 이렇게 다 자랐나 싶게 오지고 대견한게 밥 안 먹어도 배불렀다. 인생이 한 순간이라는 말이 이럴 때면 실감난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이나 낳아 키우면서 살림하랴, 직장 생활하랴 종종 거리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아이들은 다 떠나버리고 가족 모두가 모이는 시간은 일 년에 다섯 번 정도에 불과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다섯 명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섯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피아노 위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편과 지리산 반야봉에 올라 찍은 사진이다. 반팔, 반바지를 입은 아들은 여름 아쿠아슈즈를 신고, 지팡이를 짚은 채 아빠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만 해도 산 타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아들과 등산은 가지 않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야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와, 우리 아들 대단하다! 엄마는 반야봉도 못 가 봤는데?"
칭찬하는 내 말을 듣고 있던 그 모임의 총무 아저씨가 한마디 하셨다.
"현우 진짜 대단해요. 발바닥이 많이 아팠을 것인데, 그 신발을 신고 올라가더라고요."
그때서야 아들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사, 아들은 등산화도 운동화도 아닌 여름 아쿠아슈즈를 신고 있었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금방 말라버린다는, 밑창이 얇고도 얇은 아쿠아슈즈말이다. 부끄러웠다. 총무 아저씨의 그 말을 듣고서야 아들의 신발에 눈길이 간 무정한 엄마가 바로 나였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등산을 간다. 올라갈 때는 남들과 보조맞춰가지만 내리막에서의 꼴등은 항상 나다. 미끄럼이 무서워서 조심조심 하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내게는 밑창이 고무가 대어있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도 있고, 독일제 튼튼한 지팡이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들이 신었을 신발이 떠오른다. 얇아서 아무런 지지대가 되어 주지 못했을 신발, 아무런 골도 파여있지 않은 신발을 신고 1738m를 오르는 동안 아들은 얼마나 미끄러웠을까? 부끄럽고 미안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내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 하나하나 신경 써주지 못했다. 명색이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날마다 알림장을 살피지도, 준비물을 챙기지도 못했다.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일 년을 보내기 일쑤였다. 내가 담임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주말마다 실내화를 가방에 넣어주고, 신발 빨아오기 과제를 내면서도 아들의 신내화는 사 주면 그만이었다. 노란 색이 되었는지 갈색이 되었는지 신경쓰지 못했다. 그저 끼니 챙겨주기에도 급급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이제는 나를 챙겨준다. 세상살이에는 나보다 더 빠삭하여 필요한 물건이나 정보를 적절하게 알아온다. 잘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저절로 큰 듯 엄마인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의젓하다. 세월이 금방 흐른 듯 하다. 출가한 자녀 없으니 아직은 품 안의 자식이라 할 수 있을까? 새 사람이 하나 둘 들어오고, 그때 오늘의 나를 되새겨 보노라면 또 그때도 이렇게 말하겠지? 세월이 유수와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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