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코로나라는 처음 맞이하는 사태로 아이들 개학도 한없이 연기되고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앙꼬없는 찐빵처럼 심심하고 재미없다.
학교는 나오지만 뭔가 이상하다.
어렵게 개학 좀 해 보나 했더니 이태원발 불운한 소식으로 인해 5월 연휴에 자녀한테 방문하고 온 두 선생님도 이태원 근처에도 안 갔는데 재택 근무중이다.
이래저래 2020학년도 학교는 어렵다.
'스승의 날'이라고 하여 별 다를 것이 없다.
김영란 법 이후로 카네이션 꽃 한송이 받는 것도 금지된 오늘, 우리끼리 자축이라도 해 보려고 했더니
사람 모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그조차 눈치가 보인다.
창 밖에는 여름 장대비처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산 아래까지 내려와서 노는 지금 세상은 온통 흐리고 몽환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짠~~~
선물이 배달되었다.
10년 전 내가 모시던 교장선생님이 화분을 보내주셨다.
퇴직하신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잊지않고 선물을 주신거다.
세월이 흘렀어도 빛이 바래지 않는 것이 진짜라는 지인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족한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시다.
세련되지도 않았고, 달변가도 아니셨으나 사는 것 자체가 진솔하고 맑은 분이셨다.
권위적이지 않은 그 소탈함이 참 좋아서 근무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학교를 옮긴 이후에도 그때 근무한 사람들과 간간이 모임을 가졌었다.
현직에 계신 것도 아니고, 십 년 가까이가 지나버린 인연인데 잊지않고 이렇게 챙겨주셔서 고맙기만 하다.
어디서든 교장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다른 기관과는 달리 아무리 좋은 인연이래도 4년 이상은 근무할 수 없는 학교의 특성상 학교 안에서 동료교사나 학생들과 인연을 이어가기란 웬만한 의지를 가지고는 어렵다. 학교 몇 군데 옮기고 나니 청춘이 다 가 버렸다는 자조섞인 말을 그래서 하는거다.
교장선생님과는 순천의 작은 학교에서 만났다. 작은 학교니 근무하는 선생님도 몇 분 안되었고, 학생수도 30명도 안되는 미니학교였다. 구성원들의 수가 적다고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 아니다. 문제는 구성원이 누구냐는 거다. 몇 명 안되는 작은 학교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불거지고 목소리 큰 한 사람이 있으면 큰 학교에서 문제 있는 것보다 그 파급력이 훨씬 크다. 교장선생님의 넉넉한 인품으로 그 작은 학교는 진짜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어느 해 겨울 방학, 수가 몇 되지 않기에 단독 상품으로 여행을 가기는 힘들어서 각 가정에서 자녀들을 한 명씩 데리고 와서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가게 되었다. 8명이 자녀와 대동했는데 딱 한 사람. 이미 자녀가 다 자라버린 교장선생님만 사모님을 모시고 왔었다. 처음의 불편하고 어색해던 순간은 잠시였고, 교장선생님만큼이나 소탈하고 따뜻한 사모님과 함께 여행을 잘 마치고 왔었다. 무엇보다 부산에서 19시간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에서 내려 오사카를 여행하고, 다시 19시간을 배에서 자고 부산에서 내려 자갈치 시장을 들렀던 기억이 먼 옛날 이야기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이왕이면 따뜻한 사람,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나 역시 누군가의 제자였으면서도 꽃 한송이 보내지도, 편지 한 장, 문자 한 통 쓰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스승이었던 것으로 오래 전 제자가 소식주기를 희망하는 이 이중성을 어이할꼬?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전화를 해 주던 웅이도 올해는 소식이 없다. 중학교 때 학업을 중단하여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인 내가 '제 인생의 유일한 선생님'이라는 기분좋은 멘트도 날려줄 줄 아는 웅이. 이제 곧 마흔이 다 되겠다. 오늘 소식은 없지만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교단에 선 지 30년이 넘었으니 긴 세월이었다. 그냥 오늘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그 안에서 모진 말로 상처주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무수히 많은 폭력과 얼룩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의 인연으로 한 교실에서 생활하며 스쳐간 많은 제자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선행아, 현정아, 선미야, 의혁아, 태형아, 선화야, 웅아, 금종아, 종석아, 재영아, 지훈아, 경호야, 준석아, 숙영아, 찬종아, 의진아! 모두모두 주어진 자리에서 행복해라, 건강해랴!
'일상의 풍경 > 일상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818 이사 (0) | 2021.08.19 |
---|---|
고흥 나로도 끝에는 아름다운 쑥섬이 있더라 (0) | 2020.11.04 |
명예퇴직 (0) | 2020.03.06 |
아듀 2019년, 보성 율포해변 불꽃축제! (0) | 2020.01.05 |
철새보러 가는 길, 순천만 (0) | 2020.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