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7년을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했다.
원래는 추석 지나고 하려고 했는데 새로 이사올 분의 부탁으로 갑자기 하게 되었다.
이 아파트에서 17년을 살았다.
중학교 2학년이던 큰 딸아이는 30대가 되었고,
전학까지 했던 둘째 딸아이는 20대 끄트머리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이던 막내는 27살의 청년이 되었다.
나 역시 아슬아슬하게 30대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이제는 예순 고개가 코 앞이다.
무정한 세월이다.
여기서 세 아이를 키웠고,
시어머니를 6년 2개월 모셨으며,
우리 엄마가 내 살림을 도와주려고 작년까지 다니셨다.
친정에서 버스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라 우리 엄마 우리 집 오기 좋아하셨다.
그런 추억을 다 이 집에 묻어두고 이사했다.
오래 묵은 집이라 버릴 책이나 옷이 엄청났다.
쓸만한 옷 70개 정도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였고,
또 쓸만한 책 한 박스는 알라딘 중고가게에 택배로 보냈으며,
나머지 옷과 책은 아파트 재활용함에 버렸다.
그 양이 엄청났다.
아이들이 대학가면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초, 중학교 흔적들도 이번에는 미련없이 버렸다.
부엌살림이며 신발 .....무슨 짐을 이렇게도 많이 지고 살았나 싶을만큼 많았다.
작년 여름, 거의 한 달에 거쳐 집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던 둘째 딸아이가 자신이 정리할 때는 버리지 말래더니
왜 이번에는 다 버리느냐고 물었다.
결국 모든 물건은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다.
사람도 물건도 시절 인연이 있어야 내 것이 되기도, 버려지기도 하는 거다.
이 집에 이사올 때만 해도 신축 4년된 아파트였고, 약간의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서 아무 것도 손 보지 않고 왔었다.
살면서 화장실만 리모델링하고, 엄두가 안 나서 다른 데는 손을 못 댔더니
벽지는 낡았고,
싱크대 한 쪽은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결심한 건데, 막상 사진으로 다시 보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 두 엄마까지 한때는 여섯 식구가 복닥거리고 살았는데...
다 떠나고 이제는 둘만 남았다.
무엇보다 이 집에 배인 엄마의 흔적이 사라지는 듯해 슬펐다.
못난 딸아이 도와주느라고 김치 담아다주고, 고추가루에 참기름, 들깨가루, 고사리에
명절이면 생선까지 사 나르던 우리 엄마.
음식 만들어다 주고, 거실에 쌓인 먼지 닦아주던 우리 엄마의 흔적이 이 집 곳곳에 배여 있는데.
그 모두를 다 두고 떠난다.
같은 아파트에서 십 년 이상 살면 안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올 여름은 유난히 하늘이 파랗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인 듯 높고 푸르다.
초등학교가 앞에 있어서 아이들 운동회 소리, 재잘대며 공 차던 소리로 시끄러울 때도 많았고,
봄이면 운동장 흙이 날아와서 먼지가 쌓이기도 했으나,
우리 아이들이 다녀서 추억이 많은 학교.
오래 살았기에 정도 많이 들었다.
교통이 편리하여 광양으로도, 여수로도 나가기 쉽고,
아이들 버스 타고 다니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앞이 탁 트였고,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자유롭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떠나지만 오래도록 마음 속에 '우리 아파트'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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