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명예퇴직 대상자 공문이 내려왔다. 진즉 명예퇴직을 신청하였기에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활자로 그 대상자를 확인하니 씁씁한 기분이다. 나와 36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언니가 교단에 선 지 만 33년이 되는 이번 2월에 명예퇴직을 하였다. 다른 교사들은 명예퇴직을 해도 특별승진을 하여 교감으로 표기되었는데 혼자만 공문 맨 끄트머리에 그냥 교사 김oo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알아봤더니 병휴직이라서 그런단다.
아깝다. 너무너무. 33년을 쉼없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데 작년 초 불미스런 일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일 년 쉬면서 낸 병휴직으로 인하여 마지막 문서에도 혼자만 특별승진이 아닌 채 기록되었다. 어차피 이름 뿐인 거 그렇다고 하여 '교감'이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아무렇지 않다고 본인은 말하지만 옆에서 교직 초년때부터 명예퇴직까지 그 과정을 세세히 지켜본 나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다. 현장에 있는 동안, 아이들의 일 년을 책임지는 담임을 하는 동안 어느 한 해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재주많은 교사였는데...끝을 이런 식으로 내게 되어 정말로 아깝다.
교사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친구와 심하게 장난치고, 모둠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친구까지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아이를 교사 책상옆에 혼자 앉힌 채 수업을 해도 아동 학대, 교실 뒤에 나와 서 있으라고 해도 아동학대, 복도에 나가 있으라고 하면 수업권 침해,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기 위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도 아동 학대. 체벌이 아닌 규칙을 지키기 위한 이런 행동도 학부모가 기분나쁘게 받아들이면 아동학대가 된다. 이런 아이를 제재할 합리적인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모른 체 하자니 여러 아이들의 수업권이 침해되고, 나무라자니 수업진행이 끊기는 것은 물론 뒷 일도 걱정이 되는 게 요즘 교실의 모습이다. 교사의 손발이 꽁꽁 다 묶여 있는 요즘이다. 교육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의문이다.
언니는 단짝 친구의 친언니였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의 언니였지만 현장에서 동료교사로 만난 이후 지금껏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교직에 대한 소신과 사명감이 뚜렷하고 교사로서의 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동료들과의 협력관계도 좋아 젊은 사람들 업무 많은데 학년이라도 도와줘야 한다면서 그 어려운 5, 6학년 복식학급을 자원해서 2년을 맡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55살 무렵에. 이번에 사건이 터진 학교에서는 1학년을 내리 3년을 연임했다. 학교에 처음 들어오는 1학년을 가리키는 말로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자유가 많이 보장되고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유치원 생활에 비해 40분 수업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고, 단위수업시간에 도달해야 하는 학습목표가 있는지라 학교에 처음 들어온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1학년 교사는 그런 아이들에게 풀칠하는 법, 가위질 하는 법, 글자지도, 화장실 가는 법, 손 씻는 법, 숙제, 일기, 심부름 등등 교과 수업 외에도 하나부터 열 개까지 다 새로 가르쳐야 한다.
26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명도 낙오되지 않도록 글자를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고, 독서를 통한 몰입의 즐거움을 알 게 하던 언니였다.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일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하여 결국 명예퇴직으로 이어졌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처음으로 낸 병휴직이 아니었더라면 명퇴의 용기도 못 냈을 터인데 오히려 잘 되었다고 한다. 자연인으로 기쁘게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과정은 하나도 따지지 않고 결과로만 이야기한다. 언니의 청춘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30년 넘게 애정을 가지고 해 온 일에서 내 쫓기다시피 나가는 것이 비록 자의에 의한 일이지만 너무나 가슴아프다.
"어디서든 행복할 것"
자연인 김00의 남은 인생이 봄날이기를 응원합니다.
아침마다 분주하던 아침 출근길에서 해방되어 차 한 잔으로 시작하는 여유있는 아침도 맞이하시고
국악당에서 하는 공연도 관람하시고
여성회관에서 하는 퀼트나 손바느질, 냅킨공예 등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도 원없이 배우면서
그렇게 할랑할랑 살아가시길 바랄게요.
그러다가 심심하면 집 뒤 텃밭에 올라 고사리 끊어 말리고
형부가 좋아하는 머위대 뜯어 조물조물 무쳐내고
잔디밭의 잡풀도 매고
간혹은 눈내리는 지리산과 눈마춤하여 "좋다, 좋다"
감탄하며 그렇게 사세요.
꼭이요~~~
2020년 2월 21일에 쓰기 시작하여 3월 6일에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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