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소휴당의 가을은 고구마캐기로 시작한다.
지난 6월 말에 심었던 고구마는 해남에서 모종을 주문하여 심었다.
설 무렵 씨앗하려고 남겨둔 고구마를 밭에다 묻어두면 순이 자라고
그 순을 잘라서 심으면 된다고 하였지만 번거로워 작년에 모종을 산 곳에서 다시 주문하여 심었다.
모종을 판 분은 딱 90일만 키우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웃 할머니는 순 자란 걸 보고 캐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다.
누구 말을 따라야 하나...
옆지기는 초등총동문회를 가고 없는 주말
고구마 캐 주러 온 친구랑 둘이 가을 햇살 아래서 고구마를 캤다.
이렇게 무성한 고구마 순을 먼저 걷는다.
부지런한, 살림 잘하는 주부는 저 순을 벗겨 말린 후 겨울에 나물로도 쓴다지만
나는 버리는 게 일이다. ㅎㅎㅎ
고구마순을 자르고 비닐까지 걷어내면 이런 모습이다.
다른 집 고구마밭과 다르게 삼각형 모양으로 위로 솟은 이랑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튼튼하게 알도 잘 들고, 캘 때도 이랑만 무너버리면 되니
에너지가 덜 들 터인데....
고구마순 심을 무렵 옆지기한테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었다.
"하고 싶으면 당신이 해."
나는 아무 소리 못하고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속으로만 부글부글....
아니나다를까 캐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대규모로 하는 농부야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뒤집어놓으면 주우면 그만이라지만
그럴 수도 없는 우리는
그저 앉아서 수없이 호미질을 할 수 밖에 없다.
고구마는 땅 속 깊이 들어있고, 작년에 비해 작황도 부진하다.
군데군데 굼벵이가 파 먹어서 모양도 좋지가 않다.
굼벵이 없애는 약을 고구마 심기 전에 미리 해야 한다는데 그 일도 안 한 모양이다.
무조건 무농약 식품을 먹겠다는 일념으로다....
내 친구 고생께나 했다.
나보다 더 일을 안 하고 자라서 하나의 줄기에 고구마가 하나씩 열린 줄 알았다는 친구다.
ㅎㅎㅎㅎㅎ
그래도 시간이 가니 수확물이 보인다.
소휴당을 구입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멋모르고 봉사 문고리 잡는 식으로 농사를 지었던 작년이 더 풍년이었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스승삼아 약치는데도, 풀 뽑는 데도, 언제 작물을 심고 가꾸는지도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 망했다.
고추는 탄저병이 와서 일찍 대를 뽑아 버렸고,
고구마는 굼벵이 약을 안해서 힘들여 캐 놓고 보니 버릴 게 반이다.
일단 모양이 너무 안 이뻐서 누구를 줄 수가 없다.
깨는 장마철에 베어냈는데, 하우스 안에서 말리는 중 많이 썩어버려서 쓸 게 없고
오늘 털어낸 들깨도 들인 품에 비해 수확량이 보잘 것이 없다.
그 뿐이랴.
소휴당에는 감나무가 무려 16그루나 되는데 따 먹을 감이 없다.
겨우 십 여 개 땄을 뿐이다.
달리기는 많이 달렸는데 약을 안 해선지 지난 태풍 때 다 떨어져 버렸다.
분명 우리가 이 집을 구입할 무렵에는 유자나무에는 노란 유자가,
감나무에는 단감과 대봉이 가지가 부러져라 달려있었는데 말이다. ㅠㅠㅠ
아무리 재미삼아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들인 수고에 비해 소출이 약소하니
흥이 안 난다.
좋은 것으로만 골라 딸에게, 아들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엄마에게 드리고 나니
남은 건 호미에 찍혀 흠있는 것, 굼벵이가 파 먹어 못 생긴 것 뿐이다.
아마도 농사짓는 대부분의 농부들이 그러겠지.
교훈이라면 내년에는 심을 때 좀 힘이 들더라도 꼭 삼각형 이랑을 만드리라 다짐해본다.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한 마디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으리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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