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
남은 여백의 운치가 있고
벚꽃은 남김없이 활짝 피어나야 여한이 없습니다.
배꽃은 가까이서 보아야 맑음과 뚜렷한 윤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이나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사도 그렇습니다.
꽃이나 잎만 구경할 게 아니라 내 자신은 어떤 꽃과 잎을 펼치고 있는지
이런 기회에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꽃 앞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눠보라
짐이 훨씬 가벼워지고
꽃한테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꽃은 우연히 피지 않습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서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는 그 배후에 인고의 세월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참고 견딘 그 세월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모진 추위와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
이런 악조건에서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나무와 풀들만이
시절인연을 만나서 참고 견뎌 온 그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 내는 겁니다.
-2000년 봄 길상사 정기법회 중에서-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연기법이거든요.
꽃이 핀다는 것은 그냥 봄이 돼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기후, 온도, 습도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을 때 꽃이 피는 겁니다.
꽃 씨앗은 항상 존재하되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은 내가 잘 나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이 잘 도와줘야 잘 되는 거거든요.
내 잘나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이웃 덕분이죠.
덕분이라는 것은 말미암아 잘 되는 것이거든요.
부처님 가르침에 보면 우리의 삶은 본래 나자신은 이웃 덕분에 잘 되는 것이고,
때문이 아니라 덕분입니다.
남 탓 할 때는 너 때문이야 그러지만 마음가짐으로 덕분이야 생각한다면
항상 감사함으로 살 수 있겠죠?
-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덕조스님의 말씀.-
지난 추석 연휴 끝무렵에 친구랑 찾은 불일암인데 버리기 아까워서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
여러 번 다녀왔지만 참 좋은 곳이다.
송광사 절도 좋고, 그 절을 받히고 있는 조례산, 그리고 순천 쪽으로 치우친 선암사,
쌍향수... 등 다 좋지만 불일암은 특별히 더 좋다.
이 날도 송광사까지는 가지도 않고 불일암만 갔다가 내려왔다.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약 십 년 간 머문 암자.
책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고, 사람들 속의 불일암이 싫어서
스님은 다른 산 속으로 떠났지만
돌아가신 후 이 암자 후박나무 아래 묻히셨다.
불일암 진입로부터 법정스님의 겉모습처럼_인자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깐깐하고, 원칙에 충실하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 무서움마저 들게 한다. -
정갈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이 정겹고 좋다.
불일암 암자 작은 마당에서 눈을 들면 이런 풍경이다.
조계산 산너울이 한 겹 위에 또 한 겹.
이 날은 하늘도 푸르고 날씨마저 쾌청하여 아름다움을 더한다.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이 유일하게 소유한 네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책, 차, 라디오, 그리고 이 채마밭이다.
채마밭에 잡초가 있다면 게으른 수행자가 사는 곳이고
채마밭이 잘 가꿔져 있다면 부지런한 수행자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후배 스님들이 가꾸는 채마밭이리라.
풀과의 전쟁이 여기에도 있었는지 비닐이 씌워진 위에 배추가 심어져있다.
자연과의 친화, 자연의 순리를 강조하는 법정스님이 계셨을 때도 저렇게 비닐을 씌웠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ㅎㅎ
여기가 법정스님의 영원한 휴식처다.
예전에는 대나무 울타리가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울타리도 있고,
수생식물이 있는 화병도 있다.
"스님,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법정스님이 즐겨 앉으시던 나무 의자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은 방명록이 있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이 담긴 작은 책갈피도 놓여 있다.
사람들도 이 곳에서 와서 편안함을 느끼는걸까?
고단한 삶에 단비가 필요한 사람들,
스님을 그리워하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서 쓴 방명록을 넘겨 보았다.
2019년 8월 25일
<삶에 지치고 힘이 들때마다 스님글 읽으며 위로받고 지냅니다.
스님이 많이 보고 싶어 불일암에 다녀갑니다.>
2019년 8월 25일
<세상이 더욱 밝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랍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
주변도 참 정갈하다.
삶에서도, 글에서도 <맑고, 향기롭게>를 실천하고 가신 법정스님,
그 분의 향기가 그리운 분은 간혹 송광사 불임암에 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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