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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느티나무 이사가는 날 그리고 외삼촌

 

 

 

 작년까지 텃밭이 있던 자리에 체육관이 들어선다.

나란히 있던 느티나무 두 그루 중 덩치가 큰 오른쪽 한 그루는 겨우 살리고

왼쪽 한 그루는 베어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나무의 물이 오르고 가장 이파리가 많아 활동이 왕성한 이 여름에

나무는 몸통의 거의 대부분을 잘리고 이사를 가야했다.

처음에는 그마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하여 잘라내기로 했다가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동문과 교장선생님의 뜻에 따라 이사가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11월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때쯤이면 이파리 다 떨구어 몸피를 줄일 때라 이사에도 훨씬 스트레스 덜 받았을 터인데....

저렇게 몸통만 남은 채로 이렇게 더운 여름날 이사가서 뿌리 내리고 잘 살 수 있을까...


전기톱과 중장비가 동원되어 이사가는 데는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여 년을 키워온 느티나무는 그렇게 학교를 떠나갔다.

비님은 내리는데 나무를 해체하는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 마음이 착찹하다.

사람과의 이별만 슬픈 건 아니다.

오래 타던 승용차와의 이별,

오래 살던 집과의 이별(새 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덜할까?)

오래 정붙인 애완동물과의 이별도 사람과의 이별 못지 않게 슬프다.

아이들이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던 아름드리 느티나무야!

어디서든 제 2의 인생 잘 살아내렴.


 

 

 

 

 

 

 

이 날 저녁,

작은 외삼촌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아침 잘 드시다가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병원으로 가는 119 차 안에서 심정지가 왔다. 병원에 도착하고 6시간쯤을 견디다가 먼 길 떠나셨다. 엄마의 바로 위 오빠여서 엄마가 많이 슬퍼하셨다. 표현은 별로 없으신 분이지만 속정이 깊어 가을이면 농사지은 쌀을 우리집까지 한 가마니씩 보내주셨다. 손수 농사지은 양파며, 배추 등도 매년 주셔서 그것으로 김장을 하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자식에게 한 마디 말씀조차 없이 황망히 떠난 길이라서 서운하긴 했으나 나이든 이의 마지막 집이 요양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돌아가실 때조차 남에게 폐끼치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 반영된 건 아닌가 싶었다. 


"외삼촌! 당신도 느티나무처럼 이승의 삶을 버리고 저승으로 이사가신 거시지요? 그곳이 어디에 있든 부디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요. 이승에서처럼 아프지도 마시고, 지병으로 고통스러워하지도 마시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게요. 당신이 이승에서 베푼 따뜻한 정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