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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정태춘 박은옥님의 40주년 순천 콘서트

 정태춘 박은옥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순천 콘서트장에 다녀왔다.

1979년에 정태춘의 곡 <회상> ,<윙윙윙>곡으로 데뷔한 박은옥,

1980년에 정태춘과 결혼하고 이후 지금까지 각각의 솔로곡을 발표해 왔다.

한때는 노래를 더 이상 만들지도 부르지도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아내 박은옥의 요청에 다시 노래를 만들고, 작년까지도 전혀 계획에 없던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답고 시적인 노랫말로 가사를 쓰는 정태춘은 더이상 노래를 하지 않는 동안

가죽공예를 하다가 사진을 하다가 이제는 한시와 붓에 매료되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오후 5시 반,

옆지기와 만나 부랴부랴 순천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술회관 앞 금성면옥에서

김치찜과 만두를 시켜 놓고 기다리는 데 마음이 조급하다.

주문한 지 15분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오고 음식은 정갈하고도 맛있다.

밥이 코로 가는 지 입으로 가는지 모르게 바쁘게 먹고 예술회관에 들어서서

입구 붓글씨를 구경하다 보니 시간은 금새 7시 가까이 되어 버린다.

7시 부터인 줄 알고 그리 서두른 것인데 공연은 7시 30분부터란다.

여러 붓글씨 중에서 내가 가장 맘에 든 싯구


 봄은 오구 지랄이야

꽃비는 오구 지랄

십리벚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드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드냐

악양천 수양버들만 머리풀어 감드라.


섬진강 박시인 2018년 8월



 

 

 

순천문화예술회관 정경

914석의 관람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어진 지 오래되어 낡았다.

사실 이 분들....잘은 모른다.

이 분들이 데뷔하던 시절 나는 겨우 중학생이었고,

그리하여 가슴절절한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한 기억이 없다.

<촛불>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는 옆지기가 좋아하여 종종 부르는 노래이다.

나는 박은옥님의 <봉숭아>를 대학 다닐 때 좋아했었다.


어느 겨울,

야학에 다니는 내 친구는 야학 교무로 일하던 동갑내기 남자친구를 좋아했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좋아하는 사이였다.

간혹 친구인 우리와 만나 함께 차를 마시거나 탁구를 치는 게 마음을 표현하는 전부였었다.

머잖아 우린 4학년이 될 것이고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고 했다.

친구랑 나랑 남자는 셋이서 거리를 거닐었고

친구는 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길을 걸어가면서 생음악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이에게>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깊은 밤에도 잠못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마음을 사로잡게

음~ 달빛 밝은 밤이면 음~ 그리움도 깊어

어이홀로 새울까 견디기 힘든 이 밤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 아래 고요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오, 내 더운 가슴 안아주오.


노래 부르는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이렇게 직설적이고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노래를 나에게 불러달라니.

그럼에도 암말 않고 응했던 건 내 친구의 마음이 나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린 그날로부터 많이 멀어졌고,

내 친구는 야학 교무랑 손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한 채

지금껏 나까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 이름 석자로만 남았다.

누구 말처럼 인연이 아니었던게지...


<사랑하는 이에게>는 앵콜곡으로 나왔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정태춘 님의 독보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늙지 않았고

가만히 귀기울여야 들릴 것 같은 박은옥 님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따님이 그랬다던가?

아빠의 늙은 목소리로 젊은 날의 노래를 듣고 싶다 하여 기획된 콘서트라고.

나이 들어갈수록 더 깊어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순천 콘서트는 이분들의 올해 기획된 22번째 콘서트 중 11번째로

반환점은 도는 콘서트라고 한다.

건강하게 계획된 콘서트를 잘 마무리하여 누군가의 가슴 속에 추억을 소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