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장흥 용산초등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업무를 보고 나오는 데 특이한 비석을 보았다.
학교마다 장학회에서 세운 비석이나, 학교를 거쳐 간 선생님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비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서 본 비석은 어느 학교에서도 본 적이 없는 비석이었다.
대개가 선생님의 공적을 치하하는 짧은 공적비인 경우가 많은데
고송 조여재 선생님의 사은비라는 제목의 이 비석은 흡사 편지를 쓴 듯
내용이 세밀하다.
더구나 1946년에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2008년 비석을 세우던 당시
이 분들의 연세는 아마도 일흔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한 두 분도 아니고 57명이나 되는 분들이 뜻을 모아 비석을 세운 것이 놀랍기만 하다.
고송 조여재 선생님 사은비
어린 시절의 제자가 칠순노령이 되어서 정든 교정에 사은비를 세웁니다.
선생님과는 일제의 학정에서 벗어난 해방정국의 어수선한 때인 1946년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졸업까지
담임선생님으로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재다능하신 전인교육자로서 걸출하고 정감이 넘치신 분이었습니다.
방울방울 땀을 지우시던 열정의 스승이셨습니다.
조여재 선생님!
기나긴 세월 동안 뼈 속에 새겨진 가르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함께 뛰놀던 추억이 그리도 사무칩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 부모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고송 조여재 은사님!
우리는 은사님의 바램을 다 채워 드리지는 못해지만 저마다 소중하고 보람찬 역정을 꾸려 왔으며
무엇보다가 은혜를 아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은사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이 잠드소서.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용산초등학교 20회 제자 일동
엊그제가 제38회 스승의 날이었다.
커피 한 잔, 카네이션 한 송이도 받으면 법을 어긴 게 된다고 한다.
우리 학교도 별다른 기념식도 없이 지나갔다.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르게 사는 길인지....
자기가 입은 은혜를 다시 기억하여 그 은혜를 갚고 사는 사람은 통계적으로 3%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여재 선생의 무엇이 60여 년이나 지나서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스승을 위하여
일흔 넘은 제자들이 이런 사은비를 세우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면서 존경의 마음이 든다.
오늘, 내가 속한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
'일상의 풍경 > 일상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싱그러움이 넘치는 6월의 순천만정원 (0) | 2019.06.03 |
---|---|
뻥튀기 (0) | 2019.06.03 |
꽃비 (0) | 2019.04.26 |
<치유의 숲> 화순 만연산 둘레길 (0) | 2019.04.19 |
온통 노랑노랑! (0) | 2019.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