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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여권에 도장 찍으러 가는 길

아, 베니스!

베니스,. 베네치아 드디어 이 곳에 닿았다.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기대감이 큰 곳이기도 했고,

또 가장 인상적인 곳이기도 했다.

여행지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지 물의 도시 베니스,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그 베니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이 베니스는 121개의 섬과 435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개펄 위에 세워진 인공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보트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봐도 봐도 멋진 풍경들이다.

가이드가 벽에 붙여놓고 베니스의 전체적인 부분을 설명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니면 우리의 말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우리는 쫓겨났다. ㅎㅎ

기가 작고 얼굴이 이탈리아 태양빛에 익어버린 레오 가이드는

한국화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우연하게 이탈리아로 여행와서

여기서 정착해 살고 있다 했다.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베니스는 한국 사람들이 접수.

가는 데 마다 한국 사람들의 홍수였다.

여긴 탄식의 다리

인증샷 찍으려는 한국 사람들로 넘쳤다.

여기가 한국이야? 이탈리아야?

하긴 어디든 자유여행이 아닌 이상 만나는 사람의 많은 수가 한국 사람이다.

그만큼 국력이 신장되었다는 의미겠지?


그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이

되돌아와서 겨우 사진을 찍었다.

오래 전 죄수들은 저 다리를 지나 지하감옥으로 들어갔는데

세상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들어가는 곳,

그래서 이름이 탄식의 다리라 한다.


두칼레 궁(Palazzo Ducale)

총독의 건물로 14세기에 재건축된 건물이며 베네치아 고딕 양식이다. 원래는 상당히 많은 예술 작품을 소유했었다고 전해지지만 1577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하지만 석조로 지은 건물이어서 건물 자체에 큰 피해는 없었다. 이후에 여러 예술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아담〉, 〈이브〉, 〈노아〉, 〈솔로몬의 심판〉 등 유명한 조각들이 있다. 다양한 격자 무늬와 비잔틴, 고딕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느낌을 준다.

(다음 백과사전)



여기는 플로리안 카페.

이름값 하느라고 차 값는 다른 곳의 몇 배나 비싸다고 한다.

자유여행 이었더라면 아무리 비싸도 300년 된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셔보는건데

한 시간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은 우리는 겨우 사진찍는 시간만 허용되었다.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위치해 있다.

카페 플로리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이다.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 (Floriano Francesconi)가 1720년 12월 19일에 베네치아의 승리를 뜻하는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 (Alla Venezia Trionfante)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는데, 곧 그의 이름 플로리아노의 베네치아식 이름인 "플로리안"을 따서 개칭하였다.


개업 이후 플로리안은 이 때까지 영업을 멈추지 않고 운영을 이어왔고,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 카페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방문한 곳으로 유명한데, 카사노바는 당시에 플로리안이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카페란 점을 이용해 이 카페를 드나들었고, 괴테, 바이런 경[1], 카를로 골도니, 마르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 등등 여러 유명인사들이 이 카페를 자주 방문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폴레옹이 이 곳 광장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던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재된 산마르코 성당과 1912년에 새롭게 건축된 사각형의 종탑이 보인다.

유럽의 광장 대부분의 그렇듯이 여기도 비둘기들의 놀이터.


베네치아는 6C 경 훈족의 습격을 피해 개뻘의 퇴적지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시가 건설된 곳이다.

다리와 다리로 연결되었기에 이 곳은 차가 다닐 수가 없다.

하여 교통은 배를 이용하여야 했고, 수상택시나 사진의 곤돌라를 이용하였다.

지금은 곤도라타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관광용으로만 주로 이용된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멋진 건물도 일반 주거용보다는 호텔이나 박물관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곤돌라는 운전하는 뱃사공은 곤돌리어 라고 하는데 자존감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선별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

곤돌리어 학교를 졸업하여 자격증을 받는 건 기본,

4개 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 역사와 경제 일반상식 등의 시험에 통과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건인 바로 베네치아 출신이어야 할 것,

그러다보니 곤돌리어의 월급 또한 우리 돈으로 세금 제하고 억이 넘는다고 한다.

4인 기준 80유로 정도이고, 약 30분간 좁은 수로와 수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며

운행한다.




굴이나 홍합으로 보이는 조개가 보이는 걸 보면 여긴 바다가 확실.

오래 전에 생겼지만 이 수로와 수로 사이에서 빠져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수심이 겨우 1미터 남짓.



곤돌리어가 되기 위해 실습을 하는 조수(?)가 있다.

흔들리는 곤돌라를 타고 내릴 때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사공의 보조 역할을 하는 이 사람은 곤돌리어가 되기 위한 실습을 하는 셈인데

3년간 무임금이다.

하여 이렇게 관광객이 주는 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우린 정 많은 한국인.

가이드가 넣으라는 돈보다 더 많이 넣었다.

돈 쓰려고 외국 나왔으니 아낌없이 팍팍.


오래전에 캄보디아 여행을 갔을 때 버스가 내리기만 하면

"천 원, 천 원"을 외치며 손내미는 아이들 덕분에 곤역을 치른 적이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라 그때마다 외면하고 절대 돈을 주지 않았는데

학교 다니지도 않은 채 관광객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그 아이들에게

돈 좀 줄 걸.

하루쯤 수지많았다는 생각이 들고 기꺼이 호구 노릇 좀 해 줄건데

명색이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학교 선생이면서.....

하는 생각에 두고 두고 후회가 되었었다.

그런 후회 남지 않도록 기회가 되면 기꺼이 '봉' 노릇을 하려고 마음을 바꾸었다.

돈이 남아서도 넘쳐서도 아니고 세상 모든 일은 마음 먹기 나름이니까....

이 곤도라 여행이 끝나고서는 베니스 외곽을 수상택시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느리게 천천히 흘러가는 곤돌라의 낭만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중세시대의 각기 다른 형태의 아름다운 건물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베니스, 베니치아가 이름값 하는구나.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이 글은 블러그를 시작하고 500번째 올리는 글입니다.

2014년 낯선 보성 땅에 발령난 것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회천의 날들을 기록하고자 블러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새 500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그 500번째 글이 베니스라서 특별히 더 좋습니다.

일기처럼 혼자 도란도란 중얼거리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친구도 많이 생겨서

쌍방으로 대화나누다 보니 올리는 재미가 더 많아졌습니다.


다시 천 번이 되는 그 날까지 일상의 기록을 꼼꼼하게 남겨 보렵니다.

블친여러분께도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