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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생태수도 순천

순천만 가는 길


 지난 주말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시간이 되는 친구 둘과 보성 소휴당으로 향했다.

배추 100포기, 부추 100포기, 그리고 쪽파를 심었다.

일이 아니라 놀이 삼아서 남겨둔 것인데 친구들이 즐거워해서 나도 좋았다.

엄청나게 달려드는 모기들한테 헌혈까지 하는 착한일을 하면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친구 한 명이 노래방 가자는 것을 거절하고 아무도 없는 명교리 해수욕장에서 고래고래

생음악으로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모르면 좀 어떠랴?

미아엄마가 좋아하신 노래 '유정천리'

우리 아버지가 좋아한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

또 우리 엄마가 좋아한 노래 '사랑만은 않겠어요.'

부르다보니 병석에 있는 미아 엄마 때문에 목이 메어 또 한 곡

(달도 뜨지 않은 밤에 청승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네. ㅎㅎㅎ)

내가 미아 결혼식에 불렀다는 '전선야곡'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아니 기억도 안났다.

 미아가 상기시켜줬다. 남의 즐거운 결혼식에 가서 이런 노래를? ㅎ)

또 미아가 본인의 결혼식에 불러서 남편한테 뭔 사연있나는 소리를 듣게 만든

'잊지는 말아야지'ㅋㅋㅋㅋㅋㅋ

노래로 연결되는 사연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다.


일요일 오후 12시 조금 넘어 순천으로 돌아왔다.

서울서 온 친구는 오후 3시 20분 순천역에서 KTX로 출발,

시간이 좀 남았기에

햇살은 뜨겁지만 순천만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순천만을 구경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매표소로 바로 들러가는 지름길도 있고,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출발하는 모노레일을 타고 위의 사진의 중간쯤에 있는 역에 내려서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처럼 순천시 맑은물 관리센터 부근에 주차를 하고(정식 주차장은 없다)

약1.7키로를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택한 방식은 3번.



둑길 중간에 순천문학관이 있다.

순천이 낳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쓴 개척자 작가 정채봉과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의 문학관이 있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맘에 안 든다.

정채봉 작가는 행정구역상 태어난 곳이 순천시 해룡면일 뿐이고

광양동초-광양중-광양농고를 나와 말투도 정서도 그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그의 친구도

글 속에서 그가 그려내는 고향의 모습도 모두가 광양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구역상 그의 주소는 순천이어서 순천만에 그의 문학관이 서 있다.

2001년 생을 달리한 그는 이를 두고 뭐라고 할까?

분명 즐거워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관 입구에 쉼터가 있어 잠시 쉬었다.

바람이 솔솔 불고, 문 밖의 맑은 가을하늘도 예술이다.

정채봉, 김승옥의 작품이 한 곳에 모여져 있어 책을 읽었다.

그의 대표작 <스무 살 어머니> 그리고 성장소설인 <초승달과 밤배>

초승달과 밤배를 읽는 내내 울었던 94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정확하게 햇수까지 기억하는 건 졸업식 때 제자들 몇에게 선물로 준 기억이 있어서다.


 

 

 

 

 

 

친구랑 둘이서 사목사목 걷는 길이 참 좋다.

들녘은 이미 황금물결이 되었고,

아직은 초록인 잎들도 어쩐지 여름의 그 왕성한 생명력은 잃은 듯 하다.

가는 지 모르게 가버린 청춘처럼 사람도 자연도 한 철이다.


 

 

 

순천만 입구에 있는 찻집에 앉아 단팥죽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구운 계란 두 알,

갈대뿌리로 만든 갈대차가 함께 나왔다.

친구와의 나들이가 너무 좋은 탓인지 돌아오는 길은 바빴다.

곡예운전 끝에 순천역에 친구를 내려준 시간은 출발 시각 5분 전.

계단을 내려 가고 있는데 KTX가 들어왔다는 친구의 전언이다.

친구 딸의 결혼식 덕분에 우리들이 잘 놀았던 지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