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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열한 계단/채사장 지음/웨일북

지난 12월에 목포립도서관에서 열리는 채사장의 북콘서트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신간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니 이 책도 분명 일정한 수준은 될거라고 여겨졌다.

지대얕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채사장의 개인적인 신상이 조금 나온다.

예를 들면 전교 문과생 290명 중 280등을 했던 수학성적이나,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했던 이야기

제주도로 여행가서 교통사고로 일행이 죽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했던 이야기 등

개인의 일상이 끼어드니 책은 다소 쉬운 듯도 보였으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역시 어려워졌다.


차례만 보아도 이 책의 제목이 왜 열한 계단인지 알 수 있다.


첫 번째 계단, 문학- 죄와 벌

-열여덟,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두 번째 계단, 기독교-신약성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펑펑 울었다.


세 번째 계단, 불교-붓다

-인생에서 가장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


네 번째 계단, 철학-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집을 나와 세계를 떠돌았다.


다섯 번째 계단, 이상-체 게바라

-이상적인 인간을 만났다.


여섯 번째 계단, 과학-우주

- -하릴없이 사치스럽게 책을 읽었다.


일곱 번째 계단, 현실-공산당 선언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다.


여덟 번째 계단, 삶-메르세데스 소사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무겁게 정지했다.


아홉 번째 계단, 죽음-티벳 사자의 서

모든 것이 때마침 마무리된 날, 죽기로 결심했다.


열 번째 계단, 나-우파시샤드

광장에 섰다.


열한 번째 계단, 초월-경계를 넘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때마다 책이 한 권씩 늘어나는데 읽은 책 보다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많고

그 내용이 갈수록 어려워져서 지식백화점 채 사장의 넓이가 어디까지인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가장 좋은 독서법은 열 권의 책을 읽는것보다

한 권의 책을 열 번 읽는 것이라고 하는데

몇 번을 더 읽어야 채사장의 깊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

게다가 중간 중간 삶에 대한 통찰과 부드럽게 꼬집음과 비틈은 압권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어려운 책이다.

인상적인 부분만 추려쓰려면 한 번 더 복습해보고자 한다.


(14쪽)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옷을 사고 입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듯 책을 고르고 읽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불편한 책을 읽을 것.(중략)


불편한 세계를 선택하고, 그 불편함을 극복해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세계는 아주 넓고 오래되었으며, 그래서 신비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찾거나 만들어낸 세계의 신비로움은 다양한 분야에 숨어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들춰내기 전까지 세계의 신비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 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라면 그 삶은 너무나 아쉽다.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즐기고 여행하고 놀라워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니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140쪽)

구체적으로 서구의 역사는 진리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

고대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다. 이때의 사람들이 공유하던 세계관으로서의 진리는 '신화'였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실제로 그리스의 신들과 함께 살았다. 현대인에게 신화는 단지 문학일 뿐이지만, 당시의 그리스인에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다음으로 중세가 되면 진리의 기분은 신화에서 '유일신'으로 바뀐다. 아브라함 게열 종교의 신인 야훼, 여호와, 알라, 하느님이 진리의 자리를 차지한다. 중세는 기원후 4세기부터 대략 14세기 혹은 17세기 무렵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중세의 세계관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의 50%를 넘는다.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되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진리의 기준은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된다. 특히 인간 이성의 합리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사회를 장악한다. 근대인들은 과학과 기술로 사회가 진보할 것이도, 세계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해가면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혹시 '체 게바라'에 대해서 들어봤어?"

우선 니체는 그리스도교와 이성중심주의가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밝힌다. 그 본질이란 '플라톤주의'다. 플라톤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세상을 둘로 나누기, 둘째는 둘로 나뉜 세계 중에서 형이상학적 세계를 강조하기,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세계를 양분한다. 그것은 이데아라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다. 플라톤은 우선 근본적인 세계인 이데아의 공간을 상정한다. 다음으로 이데아의 모방이자 그림자인 현상세계를 분리해낸다. 이데아의 세계는 본질로서 불변하고 영원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실체다. 반면 우리가 존대하는 현상세계는 변화하고 유한한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플라톤은 세계를 둘로 구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분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구분된 두 항 중에 하나의 항은 가치를 갖고, 나머지 항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플라톤의가치있는 세계는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였다. 구체적인 현상 세계는 무질서하고 변화하는 임의적인 세계일 뿐이다.


(215쪽)

"이상적인 인간이 있지. 그런 이는 보통 숨겨져 있어서, 극한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 타인의 시선 때문에 허세를 부리던 사람들마저도 지쳤을 때, 누가 진짜 이상적인 인간이었는지가 밝혀져. 그는 상황을 핑계 삼지 않고, 부조리에 불평하지 않으며, 자기 삶의 임무를 소홀리 하지 않지,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 자기 삶의 입법자. 혹시 '체 게바라'에 대해서 들어봤어?"


안 병장은 눈을 반짝였다.

"못 들어봤습니다. 체 게바라가 사람입니까?"

"응, 20세기에 남미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 혁명가야."

"왜 그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입니까?"

"더 나은 세계를 꿈꾼 몽상가였고, 행동하는 실천가였으며, 그의 실천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우리는 길지 않는 근무 시간 동안 체 게바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250쪽)

우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한 사람들의 한계를 쉽게 본다. 책만 본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 우선 책만 본 사람들의 한계는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현실의 폭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다른 사람들이 나약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발을 디디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당황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모든 일에서 불평불만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타인의 잘못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선과 도덕과 정의를 습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


다음으로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는 자신에게 너무도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계획과 일정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되는 일 따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옳고 그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타협과 조율을 통해서만 상황에 따라 문제를 봉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선과 도덕에 대해 하찮게 여기는 사람, 모든 것은 손익으로 판단하는 사람, 심연의 깊은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299쪽)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어

흑과 백을 온전히 구분하게 하고,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게 하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내 님을 찾을 수 있게 했네


삶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어

밤과 낮에 우는 귀뚜라미와 카나리의 소리를 들려주었고,

망치소리, 물레방아 소리, 개 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 귀에 새겨 넣게 했네.


삶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소리와 문자를 주어

어머니, 친구, 형제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가 걸어갈 영혼의 길을 밝혀줄 빛이 되었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