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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아름다운 마무리/법정/문학의 숲

이 책 참 유명한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읽었다.

산문류의 책을 읽지 않는 책에 대한 편식이 심한 탓이다.

학교를 옮기고 바쁜 학교 쫓아다니다보니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어렵게 마음을 잡고 다시 책을 붙잡기 시작한 이후 맨 처음 읽은 책이 이 책이다.


이삿짐 사이에 그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도서관 책이 섞여 있었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걸로 위안하기에는 불안하다.

얼른 읽고 다시 갖다주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좋은 구절이 참 많다.

옮겨 적으려니 팔이 아프네

그럼에도 다시 옮겨 적는 건 이렇게라도 하여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의 일부분이라도

닮고자 하는 내 노력의 표현이리라.


(78쪽)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생활의 지침.


1.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라.

2.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

3. 자신의 행동을 항상 살피라.

4. 하느님이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라.

5. 말을 많이 하지 말라.

6. 공허한 말, 남을 웃기려는 말을 하지 말라.

7. 다툼이 있었으면 해가 지기 전에 바로 화해하라.


(88쪽)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새해 달력을 보니 지나온 해가 묵은 세월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면서 또 한 해를 소모해 버렸는지 새삼스레 묻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남은 세월의 잔고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새악ㄱ에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구나 나아가 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은 죽느느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형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해롭게 일개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94쪽)

새로 지은 귀틀집의 방이 얼마나 크냐고 누가 묻기에 두평짜리 단칸방이라고 했다. 그 방으로 드나드는 문지방 위에 폭 한 자 너비의 선반이 내가 서서 손을 뻗칠 수 있는 높이로 걸려 있다. 그 위에 몇 권의 책과 옷을 담은 광주리가 놓여 있다. 옛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의 통에 견준다면 궁궐인 셈이다.


나는 이 새로운 거처에서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진실해지고,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온화해지고,

더욱 친절해지고,

더욱 인정이 깊어지고자 노력할 것이다.


(110쪽)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다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나는 대상마다 그가 곧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그곳에 그가 있어 내게 친절을 일깨우고 따뜻한 배려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0쪽)

그럼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베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말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든지 경전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그저 눈으로 스치지만 말로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울림에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어 그 경전을 말한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의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137쪽)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월든에 다녀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호숫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더 그리움의 터, 그 월든에 다녀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근교에 있는 월든 호반은 10월 말 단풍이 한창이었다. 맑은 호수에 비친 현란한 단풍을 대하자 다섯 시간 남짓 달려온 찻길의 피로도 말끔히 가셨다. <월든>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그 현장에 다다르니 정든 집 문전에 섰을 때처럼 설렜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


소소우의 생활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그대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179쪽)

바다다운 바다를 보려면 쾌청한 날씨여야 한다. 하늘빛이 곧 바다 빛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은 바다 또한 우중충하다. 그리고 바다는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언덕에 올라 멀리 내다보아야 바다의 속얼굴을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내려가 망상인터체인지에서 상행선을 탈 수 있다. 바다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망상해수욕장에 들렀다가 이내 후회했다. 철이 지난 썰렁한 해수욕장은 여기저기 너절한 시설물들이, 바라보기에 그토록 싱그럽던 바다를 더럽히고 있었다. 비본질적인 것들이 바다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었다. 이 일을 두고 그날의 화두를 삼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너무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실체)을 놓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늘 한데 어울려 치대다보면 범속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걸핏하면 전화를 걸고 자주 함께 어울리게 되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고일 틈이 없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200쪽)

개울가에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11월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평원에 들짐승의 자취가 뜸해지고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내닐다. 지상에 무성햇던 것들이 수그러든다. 그렇지만 보두 다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동안 비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채워질 것이다.


11월이 내 둘레에서는 개울가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달이다. 첫서리가 내릴 아침 적갈색 다기를 내놓았는데, 며칠을 두고 써 보아도 정이 가지 않는다. 쓰임새도 좋고 모양도 그만인데 웬일인지 그릇에 마음이 붙지 않는다.


이 일을 두고 생각하니 인간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오랜 세월 오며 가며 지내도 정이 가지 않고 떨떠름한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래 사귀지 않았는데도 서로 마음의 길이 이어져 빋고 따르는 사이도 있다. 한때는 맹목적인 열기에 들떠 결점도 장점으로 착각하기 일쑤지만 그 열기가 가시고 나면 밝은 눈으로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월이 눈을 뜨게 한다.


(215쪽)

세상살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는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 같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일몰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