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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온전히 나답게/한수희작/인디고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매거진 <around> 칼럼니스트 한수희가 나다운 삶의 방식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싶은 당신에게


재미있는 책이다,

매끄럽게 잘 써진 문체에다 조금은 괴짜이고, 상당히 의식있고 도발적인 내용이 재미있다. 살아가는 모습도 재미있다.


지금은 경기도 안양의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카페 '책과 빵'에 앉아 책장 가득 좋아하는 채들을 꽂아두고 벽에 '천 천 히'라고 붙여둔 채로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이웃을 위해 빵을 굽고 커피도 내린다. 짬짬이 학생들에게 영화 만들기를 가르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촌스러운 구호를 마음에 새기며,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린다.


표지 안쪽 작가 소개에 이렇게 써 있다. 마음 가는 구절이 많아 어떤 책보다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있다.


13쪽

하찮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런 인들에 대해 쓴 것들을 모으니 온전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되었다.


29쪽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남이 가난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내가 가난했던 때를 떠올리는 것도 좋고, 내가 가난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좋아한다.


......


가난 때문에 인생을 비관한다거나 '그 시저 좋은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라고 무감각하게 회상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동경하는 가난은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은 지키려는 가난이다.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가난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도 소금을 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


58쪽

나는 마감이 다 되어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난리법석을 치는 인간형에 가깝다. 나도 이런 내가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이런 책도 읽었다. 고이케 류노스케의 <생각버리기 연습>. 번뇌가 책 한 권 읽는 걸로 사라진다면야.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목록으로 만들고 그 순서를 곡 지키려고 노력하라. 만약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무조건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것이 이 방법의 관건이다. 이대로 하면 '그 시간 안에 나름대로 다 마쳤다는 산뜻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87쪽

사실 이 세상리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람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던 수많은 시시하고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고, 도 이 정도로 지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만은 하지 말라조 다짐한다.


89쪽

우리가 바라던 대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다.

'완벽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적당히 느슨하게, 적당히 지저분하게,

적당히 게으르게, 적당히 헤매게, 적당히 비겁하게,

뭐든 우리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97쪽

나는 외모가 왜 중요하냐, 내면이 중요하지, 하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인간에게 눈이 달린 이유는 어쩌면 눈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외모나 피부색이나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본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답게 옷을 입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또 무엇을 싫어할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런 고민의 결과가 우리의 스타일이 된다. 어쩌면 스콧 슈먼이 말했듯이 그런 고민의 과정이야말로 진짜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116쪽

아무리 새로운 물건도 빛이 바랜다. 어딘가에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으려면 경험에 쓰는 것이 가장 낫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은 돈을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 자신이나 내 생활을 조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행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비록 우리가 곧 모든 것을 잊게 된다 하더라도, 여행은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여행에서 돌아오자 어쩐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싼 호텔의 바삭거리는 침구를 떠올리면서

눅눅한 이불을 빨아 햇볕에 널었다.

돼지갈비와 감자를 넣고 맑은 국을 끓였다.

힘들 때면 더운 날씨에도, 가난한 살림에도 웃으며

누군가에서 인사를 건네는 여유를 잃지 않던

그곳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고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녀나 성인군자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완벽한 것 따위는 지그시 밟아 무시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힘든 산행의 절반쯤에 다들 억지로 힘을 내어 올라가고 있을 때 "이 정도 왔으면 됐지 뭐." 하고 내려가 버리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한다. 하루 종일 집 안을 쓸고 닦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더러움만 적당히 치우고 느긋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음식이든 잘 먹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민박집에서도 부티크 호텔이나 다를 바 없이 즐겁게 지내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자신이 속물이나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완벽해지느라 자신을 들들 볶는 대신에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관대한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

원칙을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바라던 대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다. '완벽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적당히 느슨하게, 적당히 지저분하게, 적당히 게으르게, 적당히 헤매게, 적당히 비겁하게, 뭐든 우리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142쪽

어찌 됐든 책을 사는 것은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에 가깝다. 어떤 사람의 전 생애를, 사상을, 사고를, 지식을, 감성을, 영혼을 단돈 몇 만 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돈이 아까운 일이 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전혀 건질 것이 없는 책도 많다.


244쪽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아주 작은 돌만 하나 던져도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는 삐걱거릴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약하게 만들어진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인생의 결과 같은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관심을 쏟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런 데 신경을 쓰고 살면 너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만이 최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진다.

....

인생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면 인생의 구석구석 지뢰처럼 매복해 있는 어려움들을 건너가는 것이 조금은 수워해진다. 선택을 하는 일도, 결정을 내리는 일도 조금은 더 쉬워진다.


310쪽

나는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한때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서 나를 말에 태워 성으로 데려가 주리라 기대한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당연하다). 지금 나는 그 백마 탄 왕자가 하루 종일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하고(돈을 많이 벌고) 돌아와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다 맛있게 멀어주고, 그걸고 모자가 설거지도 해주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가 퉁퉁 부은 얼굴에 매일 늘어진 추리닝만 입고 있어도 예쁘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남자가 그러면서도 잠을 줄여가며 몸을 가꾸고 배우처럼 섹시하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 걸 나는 결혼한 후에 비로소 알았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뭐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게 인생이다.


사실 나 역시 내 끼니 푸드스타일리스트처럼 한상을 차려내고 집 안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관리하며 아이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키우는 그런 이상적인 아내는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이 없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