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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발길이 머무는 곳

(구례여행) 한여름의 지리산 화엄사

 

이번주 내내 구례에서 놀았다

지리산생태탐방연수원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

여름방학 동안 교원직무연수 30시간을 운영한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지리산의 이해, 구례문화이해,

정원문화, 수목의 이해,

채식위주 식사, 자연치유 등의 이론연수가 있었다

 

3일간의 체험연수는

녹차만들기 하루

지리산 노고단 사진찍기 하루

그리고 오늘 오전의 국선도체험(요가)에 이어

오후에는 화엄사 답사가 있었다.



 


요 며칠 너무나 더웠기에

오후 한 시반의 화엄사도 지글지글 끓고있었다.

지리산은 3도5개시군에 걸쳐 있는만큼

다양한 문화재가 존재한다.

특히 구례는 화엄사, 천은사, 그리고 연곡사의

대사찰을 가지고 있다.

첫날 구례문화의 이해를 강의한 한정원 구례

차기문화원장의 말씀에 의하면

구례는 과거 백제땅 이전에 가야땅이었고

한때 화엄사는 3천명의 외부승려가 모여서 공부할 정도의

대찰이었다 한다.

 



 

 


국보 4개, 보물 8개를 품은

화엄사 이곳저곳을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둘러보았다.

무더운 날이었는데도 휴가철이라선지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막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내는

꽃분홍 배롱나무와 대웅전 앞마당을

흰 백합이 장식하고 있었다.

특히 단청을 칠하지 않아 더 멋스러운 각황전 앞

베롱나무는 단아한 멋이 절로 느껴졌다.

이렇게 더울 때 이 절을 찾은건 처음이었으나

해설사와 함께 곳곳을 살펴본것도 처음이라

새로이 알게 된 내용도 많았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만든 보제루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이 보제루는

장식을 최소로 하고, 단청도 하지 않아 절제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대웅전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석탑이 보물 132호로 지정된 화엄사 동오층석탑이다.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세워져 있는데

서탑은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정하다.



 

보제루 안에서 바라본 풍경

보제루는 앞 뒤가 다 트여있어 오늘처럼 더운 날엔 휴식으로 제격이다.

아니나다를까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부처님 공간임에도 편하게 누워있다.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하고 있는데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라 한다.

현재의 각황전에 비해 크기가 너무 큰 것은

아마도 예전의 각황전은 이보다 큰 규모였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한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언뜻 보아서는 화엄사의 국보

<쌍사자 석등>과 혼동하기 쉽다.

네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으로

무엇으로 쓰였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ㅡ

공양대로 쓰였을것이란 추측이 있다고 한다.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대찰로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의 큰 절 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타 버린 것을

인조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 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조선 숙종 임금은 장육전 건물을 다시 지어 '각황전'- 즉 황제가 깨우진 건물-

이라는 현판 글씨를 직접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각황전 현판은 국보 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너무 더워서 꼼꼼하게 자세히 보지 못하여 아쉽다.

철 좋은 날, 다시 한 번 더 찾아

꼼꼼히 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