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의 매혹적인 글쓰기
-우리나라 배낭어행 1세대로 28년째 세상을 거닐며 글을 써 왔다. 사람들은 그를 '오래된 여행자'라고 부른다.
-그간 각종 신문, 잡지 등에 여행, 문화, 삶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글을 써왔으며 가이드북, 배낭여행기, 에세이, 산문집 등 총 22권의 책을 냈다.
-EBS 라디오 <시 콘서트>,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세계 음악기행>, <모닝스페셜>, 등에 수년간 출연하여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경기대학교, 세종대학교 등의 대학교와 서울시민청 대학, KIST, 국정원, 신한은행, 도서관 등 각종 기관과 기업체에서 글쓰기 강의를 해왔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재주를 가지고 살기만도 벅찰 터인데 실로 대단한 사람이다.
글쓰기를 짝사랑하면서도 단 한 권도 쓰지 못한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책을 무려 22권이나 썼다는 것도 대단하고,
그 내용이 산문집, 여행기, 에세이 등 분야도 다양한 것도 놀랍다.
이 책은 여타의 다른 책에 비해 비교적 술술 읽히는 책이다.
1부는 여행 글쓰기로 글을 잘 쓰려면의 대주제로
기억과 글을 이어주는 기록의 세계, 언어의 세계, 글의 세계, 여행서의 세계, 여행기에서 글의 세계, 한 번의 글을 쓰는 요령, 표절과 인용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2부는 책을 만든다는 것으로
한 권의 책을 향하여, 출판사에 접속하기까지, 출판에서 오는 소외의 극복, 편집자와 저자 사이의 갈등과 극복, 출판계의 불황과 새로운 물결, 독자의 세계의 소제목이 있다.
3부는 여행작가로 산다는 것으로
여행가, 여행작가의 세계, 여행과 글과 꿈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 적어 본다.
대개 글이 안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서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고, 선명하지 않은 기억으로는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중략)
또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평소에 글쓰기 연습이 충분치 않으면 글이 잘 안 ㄴ온다. 글은 연장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반복을 통해 숙달되지 않으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여행 경험이 평범해도 글 쓸 의욕이 나지 않을 수 잇다. 남들이 다 가는 곳, 이미 여행기가 많이 나온 나라는 쓸 의욕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여행기가 많이 나온 나라는 남의 주목을 끌기 힘들다 보니, '누구나 아는 것일 텐데'하는 마음이 들어 글 쓰고 싶은 충동이 일이 않는다. 또 패키지 여행, 친구들과 재미있게 몰려다니는 여행, 너무 짧은 여행은 아무리 많이 해도 글쓰기가 힘들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에서는 내 안에 고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16쪽)
여행 후, 잔상이 남아 있을 때 빨리 써야 감흥이 잘 우러난다. 시간이 너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글 쓸 흥이 나지 않는다. 또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야구 선수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헛스윙을 하듯이 너무 잘 쓰려고 하면 글이 안 나온다. 마음을 낮추고 편안하게 써야 글이 잘 나온다.(21쪽)
글이란 무의식의 세계에서 빛처럼 빠른 영감을 타고도 온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세계에 풍성한 어휘, 감성, 기억이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신선한 낱말 하나가 문장을 빛나게 하고,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확 빨아들이는데 글을 쓸 때마다 어휘를 찾아낸다면 순간순간이 고통이다. 자연스럽게 솟구쳐 나와야 한다. 결국 평소에 늘 읽고, 들으며 어휘를 자기 안에 쌓아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가 가장 좋다. 여행기, 문학작품, 신문, 잡지 들을 읽으면서 독자, 비평가, 저자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훈련이 된다. (22쪽)
우리는 현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더듬이에 포착된 것들만 기억하고, 그중의 일부를 언어하는 기호를 통해 표현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편집이 발생한다. 편집은 과도한 포장이나 거짓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낸다는 말이 아니다. 강렬하게 느꼈던 것, 평소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등이 우선적으로 선택된다는 이야기다. (24쪽)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10년, 20년 지난 느낌, 현장을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어요? 역시 글발이 좋으세요."
글발이 아니라 기록 덕분이다. 나는 기록하지 않은 초기여행 6개월만 빼놓고, 그 후 인도 여행부터 지금까지 여행 중에 매일 일기를 2!3시간씩 썼다. 가끔 못 쓰는 날이 있으면 이듵날 4시간 정도를 썼고, 2박 3일 달리던 인도의 2등 열차 칸에서는 하루에 8시간을 쓴 적도 있다. 그곳에서 부딪힌 너무도 다른 현실의 충격을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수없이 만나는 사람, 사건, 충격적 환경 등에 서술하고, 묘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글 연습, 사유 연습이 되었다. 그후 이것은 습관이 되었고 해외에서 여행하던 약 5~6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일기장들은 지금 쌓아놓으면 내 책상 높이가 된다. 이 일기장등은 내 글쓰기의 자산이 되었다. 나는 기록이라는 뼈다귀에서 진한 사골 국물을 우려낼 수 있었다.(32쪽)
그럼 누구나 단어를 던져놓고 나면 글이 자연스럽게 잘 나올까? 그렇지는 않다. 부연 성운 같은 기억의 세계가 풍부해야만 거기서 튀어나오는 언어가 풍부해지고, 경험의 세계가 풍부해야만 기억의 세계가 풍성해진다. 결국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경험의 세계, 즉 삶의 세계를 뻑적지근하게 살아야 하고, 그걸 기억으로 담아내는 프레임이 깊고 날카로워야 하며, 글을 쓰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51쪽)
전업작가의 길을 힘들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생활를 견뎌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행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자유가 멀리 달아난다는 것.(302쪽)
대부분의 여행 작가는 궁핍하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이미지와는 달리 빛 좋은 개살구들의 많다. 잘나가는 여행작가들도 고민이 많다. 항상 잘 팔리는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고 퇴직금이나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돈을 많이 벌어놓지 않은 이상 노후가 불안하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카페, 게스트하우스, 여행사를 하거나 귀농하는 등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한다. 또 결혼 안 싱글들도 많고 결혼해도 애 없이 사는 부부도 많다.(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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