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보듬고 치유하는 작가,
박완서의 짧은 이야기 대표작들!
탁월한 이야기꾼인 박완서씨,
마흔에 비로소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기에
그동안 아내로, 엄마로 사느라 밀쳐두었던 이야기 보따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와선 지
작품도 많이 내고,
일상의 그저 그런 이야기 속에서 어찌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잘 길러내는지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우리 시대의 참 이야기꾼의 한 명이라 생각한다.
1970년 등단작인 <나목>은 물론이고,
<휘청거리는 오후>, <미망> 등의 장편을 특히 좋아했다.
똑똑한데다 효성스럽고 착해 엄마의 자랑이 되어 주던 스물 중반의 아들을 잃고
쓴 <한 말씀만 하소서> 산문집은 종교를 가지지 못한 내가 읽어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책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 분의 작품을 소설이나 산문을 좋아하는 오랜 팬이고,
그래서 박완서씨 작품이라고 하면 믿고 보는 사람이었다.
도서관 한 귀통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미처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이기에 흔쾌히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타의 작품에 비해 참 심심한 책이었다.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여기 실린 글들은 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콩트나 동화를 청탁받았을 때 쓴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입니다. 책으로 묶어 출판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그게 절판된 걸 알고 속으로 많이 아쉬웠던 차에 마침 <마음산책> 출판사의 눈에 띄어 이렇게 다시 내게 되었습니다. 과분한 새 단장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근에 쓴 걸 몇 꼭지 더 보탰습니다.(하략)
2009년 2월, 아치울 오두막에서 박완서
읽을 때 옮겨 적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하는데
이번에는 딱 한군데 밖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다.
아기를 갖기 전에 엄마는 밖에서 고된 일을 하는 아빠와 늙어서 입맛이 까다로워진 할머니를 위해 맛있는 것은 아끼고 자기는 찌꺼기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갖고 나선 어림도 없습니다. 빛깔 곱고 향기로운 과일도, 싱싱한 채소도, 물 좋은 생선도, 맛 좋은 고기도 다 엄마의 몫입니다. 엄마는 사양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골고루 먹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몸뿐 아니라 엄마의 마음도 배 속의 아이에게 나누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넉넉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마음이 넉넉해지니까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까지도 넉넉해집니다.
그전의 엄마는 담 안의 집 안만 보고,ㅈ 비안일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청소도 담 안만 하고, 사랑도 담 안의 식구들한테만 쏟았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가진 엄마의 넉넉한 마음은 담 밖을 쓸고 담 밖을 지나는 사람들과 말없이 친해집니다.
그전의 엄마는 담 안에 떨어진 신문만 봤지, 담 밖의 신문 배달 소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엄마는 넉넉한 마음으로 담 밖의 신문배달 소년에게 가장 아름답게 미소 짓고, 가끔 소년의 작고 차가운 손과 악수도 해서 소년의 하루를 그지없이 찬란하게 해 줍니다.
엄마의 배가 반달만큼 부르자 동네 사람들은 물론 친구가 친척들도 엄마의 배 속의 아기가 있는 것을 알아보고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이때부터 아기 마중을 위한 엄마의 일은 더욱 바빠집니다. 아기는 이 세상에 벌거벗고 태어나기 때문에 미리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 많기도 합니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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