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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채식주의자/한강 연작소설/창비

<채식주의자>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한국인 최초로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다.


여리고 단아한 한 강 소설가의 사진과 함께 책의 표지에 쓰여진 글이다.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지난 5월 16일에 있었으니

내가 읽은 이 책은 나온 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책이라는 뜻이다.


소설가 한강(46)은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

맨부커 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문학상이라 한다.

상금은 약 8천 600만원이고 이 상금은 한강과 번역을 한 스미스가 나눠갖는다.

6월 7일 반간된 이 책이 28쇄 발행이라고 하니, 한 쇄에 2천부를 찍는다고 하면 5만 6천권,

인세수입을 정가(12,000원)의 15%로 잡으면 1억 5천이 채 되지 않는다.

떠들썩한 세간의 관심이 가난한 소설가의 경제소득으로도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잠시 꿈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혈을 짜 내는 작가의 인세 수입이

겨우 책 정가의 10%나 15%라는 글을 며칠 전 읽고 분개했기에

괜히 계산해 보았다. ㅎㅎ


소설가 한강.

나는 이 소설가를 본 적이 있다.

30대 중반이던 그녀는 너무나 작고 가녀린 체구의 소녀같은 모습이었다.

마이크를 대고 가만가만 소설이야기를 하는데도,

귀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만큼 소리가 작았다.

그녀가 내가 속한 단체의 문학강좌 강사로 오신다 하여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몽고반점'

형부와 처제의 미친(?) 사랑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이번 맨부커상 소식을 듣고

읽어보지 못한 '채식주의자'보다 '몽고반점'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다.


그랬는데....연작소설이라는 말처럼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의 세 꼭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각의 시점을 달리하여 이어진 연작소설이다. 

읽었던 당시에는 얼른 독후감을 써야지 할 정도로 깊은 감동에 잠겼으나,

불과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감흥은 금방 시들해 지고 말았다.

대신 소설의 처음부분, 그리고 인상적인 작가의 말을 옮겨 적어보련다.


채식주의자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 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소설의 맨 처음 시작부분)


한강의 다른 소설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자칭 문학소녀 답게 소설이라면 조금 읽은 나의 시각으로

한강의 소설은 너무 난해했다.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았다.

그랬는데 이 소설의 처음은 얼마나 쉬운가?

확 끌리는 느낌이다.

지난 겨울 이 작가의 최근작 우리 시대의 아픈 화두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든 생각과 비슷하다.


잘 알려지다시피 한강은 장흥이 낳은 한승원 작가의 딸이다.

한승원 작가는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에서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사신다.

해산토굴 앞을 지나 장흥토요시장으로는 자주 가면서 

해산토굴은 들어가 보지 못했다.

장흥은 한 세기를 풍미한 이청준이나 한승원같은 거목 소설가를 배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학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여기다 한강까지 배출하고 보니....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문맥이 흐르는 땅이 장흥인 모양이다.


한강....이름이 얼마나 좋은가?

韓江

아버지가 작가답게 이름한 번 잘 지었다.

쉬우면서도, 독특하면서도 뜻도 좋고,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릴 수 없는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맨 뒷 장 작가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작가로서의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으면

아직 쉰이 되지도 않은 그녀의 관절이 망가진 것일까?

고혈을 짜내는 일이라는 앞서의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눈이 맑은 여학생 Y가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 인쇄를 해오면 여백을 이용해 고치고, 그것을 다시 타이핑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의 반복은 인내를 요했다.


하지만 그나마 손으로 쓸 수 있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성인식컴퓨터? 손끝을 대면 전기자극으로 작동되는 키보드를 주문 제작하는 일?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버렸다.


불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진기명기> 같은 프로에 나가도 되겠다'고 동생이 말할 만큼 익숙해지자 혼자 힘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나무 불꽃>은 그렇게 썼다.


다시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이 글은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열 손가락으로 두드려 쓰고 있다. 만의 하나 다시 손을 앓게 되더라도 에전처럼 부대끼지는 않을 것이다. 단련된다는 것, 감사하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2007년 가을, 한강 - 작가의 말 중에서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