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도서관 2016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 중 세번째로 읽은 책이다.
도립도서관 올해의 책은
개같은 날은 없다/이옥수
물에 잠긴 아버지/한승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그리고 이 책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는 다른 어른에 비해 어린이 동화를 즐겨읽는 편이다.
동화는 어린 시절 말그대로 어린이 일 때 잠깐 읽고 마는 경우가 많다.
한때 정채봉 선생님을 중심으로 '어른을 위한 동화'가
반짝 나올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동화읽는 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요새 동화책은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 종이의 질이나 인쇄 상태나 편집 등이 월들이 좋아졌고,
삽화까지 칼라로 되어있는데다 그 내용이 어찌나 기발하고 참신한 내용이 많은지
읽으면서도 감탄할 때가 많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별다른 기대감없이 읽었는데, 읽는 동안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낄낄대며 읽었다.
이 동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의 경쾌한 문장으로 쉽게 잘 읽힌다는 것이다.
어른들 선거의 축소판 같은 전교학생회 선거과정과
오래된 재래시장 한 복판에 소리소문 없이 들어선 대형마트의 문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엮어져 있다.
세상에는 역량있는 동화작가도 너무 많네.
부럽다~~
하고많은 가게들 중 왜 하필 떡집이냐고 누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툴툴대지만, 나는 떡집이 싫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석뽕이가 싫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거아버지나 엄마 탓이 아니라 전부 다 한석봉 어머니 탓이다. 따지고 보면 떡과 석봉이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처음 만든 건 바로 그 아줌마 아닌가. 바느질이나 다림질이나 암튼 다른 일도 많은데 굳이 떡을 썰겠다고 고집을 피울 건 뭔가. 거리가 불까지 다 꺼 놓고 칼질을 하다니. 어린애 앞에서 공포 엉화 찍을 일 있나? 하여간 지금이나 옛날이아 엄마들은 애들 공부시키려고 별짓을 다 한다.
어쨌든 학교에서까지 석뽕이라고 불리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른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시장통에서야 대충 넘어간다 쳐도, 학교에서만은 절대 안 될 일이다. 내가 하도 성질을 부리니까 시장통 다른 애들은 물론이고 조조랑 기무라도 학교에서만은 나를 석뽕이라고 안 부른데,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제 와서 내가 내앱으로 "나는 석뽕이아!" 하고 외치란 말인가. 그것도 교문 앞에서? 바로 서영지의 코 앞에서?(28쪽)
우리는 5교시 쉬는 시간에 결판을 보자며 다시 모여 앉았고, 조조가 "그럼 다수결로 해!"라고 말하자마자 기무라가 "찬성 손들어!"를 외치는 날치기 손들기를 강행하여 굴국 2대 1로 '석뽕'이라는 말을 쓰리고 결정했다. 다수결이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사회 시간에 베우긴 했지만, 막상 당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사람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데, 도대체 뭐가 민주적이란 말인가. 아! 나는 지금 다수결의 희생양이다.
아싸, 이건 다시 오지 않은 기회다. 엄마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지만, 아버지는 누가 떡 훔쳐 가나 눈에 불을 켜고 보는 사람이 아니다. 돈 받고 맞는지 확인도 안 하고, 손님이 돈 모자란다고 깎아 달라 하면 두말 않고 그러자 하고,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한테까지 척척 외상을 줘서 엄마가 아주 질색을 할 정도다. 시장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했다. 부처님을 토막 내다니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데, 그게 칭찬인 모양이다. (32쪽)
노래가 군밤타령으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조조가 빨라진 장단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애들이 그걸 보고 킬킬대자 다른 아이들이 "뭐야, 뭐야." 하며 몰려들었다 더 신이 난 조조는 가래떡을 마이크처럼 잡고 흔들며 노래부르는 시늉을 하다가, 치마를 말아 쥔 채로 옆차기와 뛰어돌려차기를 하다가, 나중엔 앞 구르기 뒤 구르기에 다리 찢기까지 자기가 할 줄 아는 건 모조리 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와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조조는 내 옆에 앉아 한석봉 어머니처럼 얌전히 가래떡을 썰다가 "석뽕아, 전교 회장이 되기 전엔 집에 오지 말라."하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한석봉 어머니보다 연지 곤지 찍고 태권도 하는 원숭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41쪽)
고경태와 방민규가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단상 위 후보자 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내 자리는 언제나 강당 저 아래쪽 나란히 맞춰 서 있는 수십 개의 줄 어디쯤이었다. 거기서 누군가의 구령에 맞춰 똑바로 줄을 서거나 누군가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몸을 비트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데 단상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달랐다. 작은 퍼즐 조작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 어느 순간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걸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조각조각인 우리들이 다 모이면 이런 그림이 되는구나, 하는 걸 나는 난생처음 깨달았다.(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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