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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느리게 걷기

 

느리게 걷기

    

 

  

200598일 목요일 맑음.

제목: 미술시간

나는 그림을 그려다. 나는 친구아고 같이 있는 걸를 그렸다. 점수는 보통일거 같에다. 미술시간이 제일 제미있어다. (중략) 미술시간에 은이가 물을 떠 와라고 했다. 근대 내가 실타고 했는대 은이는 게속 떠와라고 했다. 할수없이 떠와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드디어 순이(가명)가 일기를 썼다.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 늘 받아쓰기만 하던 순이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처음으로 나타낸 날이다. 기쁘다. 스승의 기쁨과 보람은 바로 이런 거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 기쁨.

 

순이는 올해 내가 담임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다. 체구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작고 말이 없기로도 으뜸이다. 동그란 눈이 귀여워 영특하고 여성스런 느낌을 준다. 옷은 매번 바꿔입고 오지만 간혹 철에 안 맞는 옷을 입기도 한다. 키가 너무 작아 안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순이는 글을 알지 못한다. 3학년인데 겨우 자기 이름밖에 못쓴다.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부름을 시키면 야무지게 해낸다. 묻는 말에도 작은 소리지만 조리에 맞게 말한다. 글을 모르니 순이는 다른 친구들이 쉽게 하는 아침자습도, 일기쓰기도, 실험보고서도, 수학 곱셈도 할 줄 모른다. 당연히 순이 주변에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외로워 보인다.

 

순이는 새엄마랑 산다. 때론 밥을 못 먹고 학교에 오기도 한다. 늦게까지 일하는 새엄마는 아침에 늦잠자는 바람에 밥을 챙겨주지 못하기도 한다. 밤이면 한 살이 더 많은 언니랑 둘이서 저녁을 차려 먹는다. 그리고 TV를 보고 있노라면 열 시가 다 되어 새엄마와 아빠는 동시에 귀가한다.

 

2월까지 함께 산 친엄마를 수소문하여 이렇게 된 경위를 여쭈어보았다. 유치원을 안 다니려 해서 보내지 않았더니 글을 깨우치지 못하더라는 대답이다. 고집이 세서 가지 않으려는 유치원을 억지로 보낼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쏟아내는 자기 설움이 한바가지다. 정작 순이와 관련된 상담은 몇 가지 밖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떤 이유가 되었건 학교를 이년이나 다니고서도 나무바다같은 아주 간단한 글조차 읽지 못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2월에야 우리 학교로 전학왔다고는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껏 2년의 학교생활동안 뭘했나? 까마득하다. 이 아이를 이대로 두기에는 교사로서의 양심이 허락지 않고, 이 아이를 끌고 가자니 한 짐이다. 다시 1학년으로 보냈으면 딱 좋은 이 아이를 어쩔꺼나…….

 

올해의 목표를 정했다. ‘순이의 탈 까막눈 작전이 그것이다. 여기서 1학년이면 쉽게 이루어지는 글자 익히기3학년에겐 버거운 과제이다. 3학년으로서 해야 하는 교육과정이 있기에 1학년 때 글자를 완벽하게 익히지 않으면 6학년 때까지 까막눈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글자익히기의 모든 과정은 다른 친구들이 다 가는 방과후에 이루어졌다. 날마다 남겨 간단하고 쉬운 글자를 가르쳤다. 1학년 교실로 보내면 이제 막 글자를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들 속에서 글을 익히는 속도는 빠르겠지만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1, 2학년때 선생님들이 포기한 이유가 보였다. 명희는 게을렀다. 글자를 쓰는 것으로 땡이고 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제 다 익혔다고 생각하고 보낸 글자를 오늘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점심먹고 들어와 보면 집에 가 버리고 없었다. 아이들을 시켜 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오게 하였으나 고집은 쇠고집인지 끝내 따라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글을 익힐 의욕이 전혀 없었다. 글을 모르는 불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도통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작전을 바꾸었다. 너무나 여리고 작은 아이여서 엄마처럼 따뜻하게가르치려 했었는데, 안되었다. ‘호랑이 작전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말없이 가버리거나, 숙제를 해 오지 않거나, 여러 번 배운 글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경우에는 체벌도 불사했다. 끝까지, 아이가 알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학습을 시켰다. 날마다 이어지는 받아쓰기, 0점이나 10점을 맞는 날이 되풀이 되었다.

 

나는 나쁜 선생님이 되기로 하였다. 독하지 않고서는 고집불통인 순이를 이길 수가 없었다. 손바닥을 맞고는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려대는 순이를 보노라면 내 마음도 많이 아팠다. 늘 속으로만 우는 그-아이를 바라보면서 심약해지려는 내 마음을 다독거리곤 하였다.

 

끊임없는 반복과 연습, 쉼없는 노력으로 아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점차 내 스타일에 맞추어 따라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10개의 문장을 익히고 받아쓰기를 한 후 통과만 되면 남겨둔지 30분만에 보내기도 하고, 안 되는 날이면 3시간을 붙들어 두기도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아이는 1학년 1,2학기 단계장을 거의 날마다 백 점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남는 것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가 가는 어디든 따라다니려했다. 정에 굶주린 아이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나랑 노는게(?) 편했는지 몸 아파 가는 병원으로, 때론 배구하고 있는 운동장으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가 보아야 맞아주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아이는 그렇게 아주 오래도록 오후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2학기가 시작되고, 오늘 처음으로 시켜본 일기를 이렇게 쓴 것이었다.

 

옛 선인이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3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양친이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면, 세 번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추가하고 싶다. 아주 아주 느리지만 제 몫을 해 내는 순이같은 아이를 교육하는 즐거움을 말이다.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 소질을 계발해주는 교육, 그들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다소 늦고, 쳐지는 아이들을 함께 몰아갈 수 밖에 없는 교육의 현장에서, 오늘 나는 또 귀한 깨달음을 얻는다. 느리지만 함께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