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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삶과 문학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글을 쓰는 어깨 위로 피곤이 물먹은 솜처럼 쌓인다. 그것도 일이라고,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어쩌랴? 생전 안 해 본 낯선 일인 것을, 내 머리보다, 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아는 것을.

 

   초등학교 일학년 꼬맹이 열 두명을 데리고 고구마를 캐다 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주워서 나르고 왔다. 내가 사는 섬에는 고구마 밭이 참 많다. 육지에야 지을 사람이 없어 노는 땅도 많지만, 땅이 한정된 섬엔 손바닥만한 땅뙈기도 그냥 두는 법이 없다. 봄이면 마늘에 고추, 보리밭이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섬 전체는 고구마 밭 천지가 된다.

 

  윗집 사는 해성이 엄마는 부지런도 하다. 농사도 짓고, 채소도 가꾸고, 틈틈이 돼지도 기른다. 학교 급식장에서 잔반을 얻어다 돼지를 먹이고, 돼지막을 청소하고, 또 아이들 세 명도 키운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돼지 키우는 집이기에 동네 궂은 일과 좋은 일을 먼저 알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해성이네 마당 입구에 걸어둔 대형 양은솥에서는 물이 끓어오르고, 원초적인 돼지의 멱따는 소리가 온 동네를 들썩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보다 훨씬 가녀린 몸매의 그녀가 하는 일은 끝간데가 없다.

 

   섬의 늦가을은 고구마 캐느라 분주하다. 고개만 들면 멀리 산능성이 너머로 여기도 저기도 고구마 순을 걷어논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해성이네는 동네의 빈 밭이란 밭에는 모조리 고구마를 심었기에 그녀의 가을은 더욱 바쁘다.

 

  고구마를 캐는 데는 소가 하는 일이 반이다. 먼저 고구마 순을 걷어 한쪽에 모아둔다. 소는 쟁기를 맨 채 기라죽--, 자라 죽--”하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고구마 이랑을 갈기 시작한다. 주인과 호흡이 잘 맞는 지, 안 맞는 지는 높아지는 주인의 말소리로도 알 수 있다. 온 동네가 다 알게 들리는 소리는 윗집 할아버지가 소를 운전 할 때 내는 소리다. 밭을 갈아엎거나 고구마 이랑을 갈 때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데도 밭이 갈아져있으면 그건 틀림없이 해성이 아빠 솜씨다. 해성이 아빠는 소와 아주 호흡이 잘 맞는다.

미처 손빠진 부분을 호미로 일구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고구마를 날라서 한 곳에 모으는 게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일거리였다.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주며 나르게 하였더니, 모습도 가지가지다. 평소 친했던 아이들과 손을 맞추어 양쪽에서 들고 나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힘자랑 하는 지 허리까지 차는 양동이에 가득 나르는 녀석도 있다. 시골 살아도 태반이 이런 일을 안해 본 아이들이다. 조금도 쉬지않고 떠드는 소리가 흡사 종달새 같다.

 

  아이들이 나르는 동안 앉아서 몇 이랑을 일구며 고구마를 캤더니, 금새 허리가 아파온다. 엉덩이를 내리자니 호미 쥔 손이 천근이고, 엉덩이를 올리자니 온 몸이 뻐근하다.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바닥은 금세 빨개지고, 호미를 오른손에도 쥐었다가, 왼손에도 쥐었다가 휴우, 힘들어 못하겠다. 나르는 게 낫겠는 걸. 다시 양동이를 들고 힘을 써 보지만 세상 일이란게 만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겨우 한 시간 삼십분의 노동에 넉다운이다. 아이들도 슬슬 꾀가 나는 모양이다. 어디서 보기는 했는지, 일렬로 선 채 그 작은 고구마를 전달 형식으로 바구니에 담는다. 일의 진도가 나갈 턱이 없다.

  

  우리들이 잠깐의 노동에 두 손 든 사이 벌써 며칠째 고구마밭을 붙들고 있는 해성이 엄마의 허리는 더욱 가늘어진다. 이런 날들이 보름쯤 계속되다 보면, 가을은 멀찍이 달아나 버리고 바람은 제법 코끝이 시릴 지경이 되곤 한다.

 

  캔 고구마는 종자용과 수매용으로 가려진 후 경운기도 못 들어가는 경사진 밭고랑 사이를 요새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지게를 이용하여 큰길까지 져 나른다. 그걸 다시 트럭에 싣고 잔교(배가 닿는 부두)에 몇 날이고 쌓아두면 이 섬에서는 드물게 보는 아주 큰 배가 하루 날 잡아 수매를 하러 온다. 이맘때쯤이면 하루 두 번, 배가 들어오는 시간말고는 인적 뜸한 잔교가 시끌벅적해진다. 대부분이 과자나 소주 회사에 팔린다는 울퉁불퉁 고구마가 수 천 가마니 쌓이고, 조금이라도 배에 올리기 편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암리에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한 집에서 보통 몇 백가마니를 수매하는 편이어서 늦게 캔 집은 그만큼 잔교에서 멀리 쌓아두게 되고, 배에 싣는 일손도 만만치가 않게 된다.

 

  작년에 해성이 엄마는 삼백가마를 넘게 수매했다. 재작년엔 한 가마니에 칠천원, 작년엔 육천원이었다면서, 올해는 어쩔른지 모른다고 한숨짓는 그녀를 본다. 그렇게 부부가 힘들여 삼백가마를 수매해봐야 벌어들이는 수입은 백 팔십만원. 여름내 종종거리며 고구마순을 품 얻어 심고, 가뭄 때면 물주며 공들이고 가을에 캘 때 하는 수고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돈이다. 웬만한 월급쟁이의 한 달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날들을 공들여 일하는 그녀를 보면서, 농민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곤 한다.

 

  앞날이 나으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팍팍한 세상인가? 살아봐야 별 거 없다는 자책으로 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임을 모르는 이 그 누구인가?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있다고, 속고 또 속으면서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자식 교육 때문에 육지로 떠나간 전임 목사님 대신 좋은 목사님 주십사 철야기도하러 교회로 향하는 부부의 모습은 분명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여럿에게 너그럽고, 선한 웃음의 그녀의 어느 곳에 그런 강함이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힘든 노동의 흔적은 지울 수 없어 나보다 연상으로도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래도 아름답기만 하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해성엄마 파이팅!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