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전 교사가 구입하여 공동으로 읽은 책이다. 혁신학교에 관심이 적다 보니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책을 사 두고, 방 안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여러 날이 지났다.
지난 봄, 내 방에 놀러온 친구 미아가 함께 공부한 선생님이 바로 지은이 '김태현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이 책 읽어봤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면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실제로 내 친구 미아는 수업공개하고 김태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례가 이 책에 적혀있기도 하고, 서문에도 등장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리하여 밀쳐두었던 책을 집중하여 읽었고, 김태현 선생님이나 나나 똑같은 교사생활을 했고, 이 선생님의 철학과 생각에 공유하는 바가 너무나 많음에도 왜 나는 이런 책을 쓸 생각조차 못했을까? 현상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타성에 젖어 뒤에서 비판할 생각만 했을까? 스스로의 부족함에 많이 부끄러웠던 책이다.
그 중 일부를 옮겨적어본다.
몇 년 전부터 이혁규 교수의 '수업 비평', 서근원 교수의 '아이의 눈으로 수업 보기',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 좋은교사의 '수업 친구 만들기' 등 여러 방향으로 수업을 보는 운동이 일어났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내 수업을 본다. 이 작업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교사들에게 있어서는 손이 오그라드는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이다. 자신의 수업을 실제로 관찰해 보면, 윤동주의 자화상의 시에서처럼 시적 화자가 우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느끼는 미움, 연민, 그리움 등 복합적인 심정을 교사들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자신의 수업을 처음 보는 교사는 수업 장면을 10분 이상 못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수업을 본다는 것은 자신을 발가 벗기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이다. (32쪽)
일정한 평가 기준에 의해 수업을 보는 문화는 일상적인 수업을 타인에게 보여 주는 것을 부담스럽게 만들다. 체크리스에서 만점을 받는 수업만이 최고인 듯 모든 수업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사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보게 되면 우리는 수업을 볼 때 자꾸만 '지적'을 하게 된다. '왜 저렇게 했나요?", "이런 점이 부족합니다.", "저라면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등 수업을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측정'의 대상으로 바라봄으로써 수업을 공개한 교사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버린다.(34쪽)
비평적인 관점으로 수업 보기
일정한 틀로 교사의 수업을 재단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짖고 수업을 연출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교육적 의미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교사 스스로도 자신의 수업을 볼 때, 자신이 의도한 배움이 무엇이고 그 배움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교육적 행위를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렇듯 수업을 예술적인 차원에서 음미하는 것이 '비평적인 관점으로 수업 보기'이다.(37쪽)
수업 속에 교육적 목적을 가진 행위들은 무수히 많다. 발문, 자리 배치, 인쇄물 구성, 수업 디자인 등 교사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수업에 임한다. 그러므로 수업을 볼 때 우리는 교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학생들을 몰입시켜 나가는지를 살펴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명작 수업의 곳곳에는 교사가 주의를 기울여 의도한 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수업 속에서 이런 교사의 의도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쉽고 간편하게 '수업을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려고 한다.(39쪽)
수업을 한 교사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교사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직접적인 질문을 통해 수업자의 의도를 들어야 한다. 이렇듯 '평가'와 '측정'이 아닌 '심미'의 관점에서 우리의 수업을 들여다보면, 수업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리고 수업 전문가로서의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41쪽)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 보기
교사가 있는 앞쪽에 카메라를 설치해 수업 속에서 변화하는 학생들의 얼굴 표정을 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고, 학생들이 언제 어떻게 수업에 몰입하는지를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다. (42쪽)
교사들은 '잘된 수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세련된 교수 기법, 화려한 미디어 자료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들의 '배움'을 깊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45쪽)
교사의 내면을 중심으로 수업 보기
결국 교사는 '수업 속에서 학생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학생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수업 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수업은 학생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여야 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의 마음을 잘 모아서 한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의 내면이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의 작은 행동에도 신경이 쓰이고, 그것으로 인해 수업은 흔들리게 된다.(53쪽)
무엇보다 먼저 서로의 수업을 나눌 수 있는 동료 교사를 찾아야 한다. 수업을 혼자 보지 말고 신뢰 관계가 있는 동료 교사와 함께 수업을 보면서 '내가 어떤 지점에서 무너지고 있는지', '수업 속에서 나의 두려움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55쪽)
2011학년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 나는 김태현 선생님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수업을 공개하기로 했다. 교육 경력 20년이 넘은 시점에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은 내 지난 수업 전부를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약속된 수업 전날에도 수업을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밤을 새워 고민했다. 하지만 내 안에 수업을 잘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점차 안주하는 교사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 또한 있었기에 수업 공개를 하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김 선생님이 내게 특별할 처방을 내려 준 것도 아닌데, 편안하게 수업 이야기를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나는 학생부장임에도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었고, 이런 모습을 다른 선생님께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수업을 촬영하고 김 선생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내 안에 꼭꼭 숨겨만 놓고 있어서 수업이 더 안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선생님과 함께 그 모습을 정확하게 직면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교사 1년차 때 느꼈던 수업에서의 열정이 내 몽에서 다시금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수업 시간에 기본을 충실히 하려고 한다. 학생들을 대할 때 약간의 소심함 때문에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20년차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려고 한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혼을 내고, 수업에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찾아가 격려해주기로 했다. 요즈음 수업은 여전히 힘들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만족감이 크다. 무엇보다 내 수업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이 생겨서 너무 좋다.
-경기도 안양 우oo 선생님(57쪽)
이 친구가 바로 내 친구가. 이런 좋은 책에 친구의 글이 실린 게 영광이다.
교과서를 벗어나 수업을 재구성할 용기가 있는가?
교사는 어찌 보면 지휘자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교육과정'이라는 악보에 적힌 '교과서'라는 음표를 정해진 질서대로 지휘하되, 자신만의 해석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수업기획력을 갖지 못하면 명시되어 있는 내용만을 전달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업 내용은 교과서에 매이게 되고, 교과서의 활동만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수업이 되고 만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에게 내용적 몰입이 생기지 않고 학생들은 수업을 지루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교사가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내용을 살피면서 자신의 느낌과 색깔로 수업을 재구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록 처음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점차 교사가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좀 더 확신이 생기고 내용들 사이의 연결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수업에서 배움의 지점이 분명해지면서, 교사는 교과서의 내용을 빼기도 하고 더 첨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재구성한 수업에는 학생들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교사의 해석에 따라 수업을 재구성해 진행하려 할 때 교사가 가지는 부담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닫힌 교재관'에서 벗어나 '열린 교재관'을 가지는 것 자체가 교사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과 활동들은 교육과정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과정을 준수하면서 교과서의 내용 글과 활동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다른 것으로 대체해 수업을 할 수 있다. 교과서에만 갇힌 채 수업을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과서 내용을 벗어나서 수업을 하려 하면 '나만 이렇게 해서 학생들이 시험에서 피해를 보면 어떻게 하지?', '괜히 내용을 재구성해 내신 평균이 낮게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수업 내용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더라고, 다른 반과 다르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교과서에 적힌 대로 수업을 하게 돤다. 마음은 '열린 교재관'을 지향하지만 상황 탓을 하며 '닫힌 교재관'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교사 간 합의를 통해서 얼마든지 조절하고 극복해 갈 수 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과 같이 여러 선생님이 동시에 한 학년을 가르치는 경우라면, 학년 교사가 함게 모여 시험 범위나 수행 평가 비율만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수업 내용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자주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일단 시간적으로 바쁘기 때문에 교사들이 일과 시간에 같이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교사 간에 상이한 수업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을 시도를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일과 이후에라도 토의를 해야 한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후배 교사가 먼저 선배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도해야 하고, 선배 교사라면 후배 교사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대화의 시간을 가져댜 한다. 결국 이는 절박함의 문제다. 학교에서의 우선순위를 행정업무가 아닌 수업에 둔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교사 간에 수업 내용을 협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76쪽)
교사들 간에 서로의 무너진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동료애는, 실수와 실패를 딛고 교사로 다시 서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우리네 학교를 돌아보면 이런 동료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신없이 수업을 하고 생활 지도를 하고 행정 문서를 처리하느라 교사들은 '친구'을 잃어버렸다. 늘 혼자 답답해하고 숱한 어려움 속에서 가슴앓이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학교 안에서 '수업 친구'를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업 친구 만들기'는 학교 동료 선생님 한 명과 함께 서로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에 대해 내면적인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수업 친구'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같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수업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 친구 만들기'는 일대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수업을 이야기할 때 집단적으로 수업을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집단 대화를 통해 훨씬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다수와 함께하는 집단 대화는 동료성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 내면의 은밀한 고민을 나누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나 수업 속에서 겪는 여러 좌절과 상처들, 나만이 알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깊고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선뜻 꺼내 놓기가 어렵다. '수업 친구 만들기'는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이런 숨은 고민들을 말해 보자는 것이다. 돌료 교사들 간에 서로 지지하고 위로하면 서로의 마음을 나누자는 것이다. 이런 깊은 수업 나눔이 있을 때, 교사들은 내면으로부터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수업을 개선할 수 있는 돌역을 얻게 된다.(237쪽)
이러한 '수업 친구 만들기'는 더 나아가 학교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작은 시작점을 제공한다. 끈끈한 '1:1'의 수업 친구 관계가 수업데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수업 동아리로 발전하고, 이것은 학교 문화까지 바꿔 내는 '변혁성'을 가질 수 있다. (238쪽)
'수업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가?
1단계 : 수업을 공개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 찾기
동료 교사 가운데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마음이 통하는 수업 친구를 선택해, 수업을 보고 피드백을 해 달라고 부탁해 본다. (240쪽)
2단계 : 서로의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나눔' 하기
수업 친구에게 평가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수업 도우미가 되어 주겠다느'는 것을 설명하며 설득할 수 있도록 한다. 비평적인 관점에서, 배움을 중심으로, 내면을 중심으로 수업보는 방법을 함께 이해하고 서로의 수업을 보여 주어야 한다.(241쪽)
3단계 : 수업 공동체 만들기
두 명의 수업 친구가 몇 사람을 더 모아 학교 내 수업 동아리를 만들고, 이 동아리가 확대되면 학교 차원의 혁신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학교 내에서 수업 동아리를 만들려면 수업에 관계된 책을 읽고,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좋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성찰 과제들을 바탕으로 수업 나눔을 시도하면, 서로의 수업을 공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사실 모든 교사들은 수업 변화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 계기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 누군가가 깃발을 꽂고 사람을 모은다면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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