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교장선생님이 읽어보라고 빌려준 세 권의 책 중 한 권이다.
책을 즐겨 읽으시는 교장선생님은 당신이 읽은 책 중 좋은 책이거나, 혹은 교육시킬(?) 목적의 책을 종종 빌려주신다. 이 책은 장곡중학교 국어 수석교사이며,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실천한 선생님이 직접 쓴 책이다.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데다, 최근에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방법, 수업참관, 수업평가, 학교혁신 등에 관한 내용이어서 술술 잘 읽혔다. 하룻밤만에 읽어버렸다.
교사가 직접 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그 열정과 의지에 존경스런 맘이 든다. 학기 중 시간을 쪼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단지 시간이 있어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낮으로는 연구하고 고민하고, 밤잠을 쪼개 그것을 기록한 교사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어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글이 술술 잘 읽힌다. 어쩌면 내 생각을 이렇게 글로 옮겨 놓을 수 있을까? 감탄한 구석을 중심으로 옮겨 적어본다.
그런데 시간은 참으로 정직했다.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는 교사라고 생각했다. 가끔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처녀(혹은 총각) 교사를 좋아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보며 '그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들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나와 같은 감회를 느끼겠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감회가 아니라 교실에서 느끼는 좌절이었다.
교사의 인생에 있어서 아이들이 젊은 것만으로 좋아하고 따르는 시절을 몇 년 동안일까? 젊음이 아닌 가르치는 것만으로도도 따르고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경지여야 할까? 개그맨이 되어야 할까? 그런데 새월이 지나면서 슬프게도, 젊은 교사들에겐 억울하게도, 아이들은 젊은 교사든 나이 든 교사든 그 수업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수업 속에 있던 아이들은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점 빠져 나가고 있었다. 교실에는 몸망 앉아 있고 수업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수업 속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한없는 공허를 느끼는 순간, 그 공허함을 내가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교사는 절망한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하는 번민이 덮쳐온다.(7쪽)
수업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치유와 기쁨과 높은 자존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수업은
학생들 하루 삶의 전부요,
학창 시절의 전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업은 학생들의 인생이다.'(11쪽)
교사 개인에게는 쉽지 않은 비전 있는 도전이다.
쉽지 않기에 동료들과 함께한다.
함께 배울 때 진정으로 완성되는 동료성을 바탕으로
그래서 학교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다.(13쪽)
'철들지 않으리.'
교사로 지내면서 그 세월의 두께가 더해질수록 이 다짐은 더욱더 깊어진다. 철이 든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나를 깍아내고, 이상을 버리고, 다른 이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둥글게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교사로 살아오면서 아이들을 만나며, 철든다는 것은 아이들과 다른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18쪽)
학교가 앞으로 건재하려면 학교는 학교의 본질인 공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를 살아나갈 건전한 시민을 키워내는 것, 학교 안의 이벤트가 아닌 수업 속에서 그런 학생들을 길러 내는 것, 그것이 학교를 공교육 기관으로 건재하게 할 것이다.(28쪽)
학교가 미래를 살아갈 시민을 키우는 곳이라면, 수업은 그런 시민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 미래 사회는 스마트폰이 대변하듯 기존의 것들이 서로 얽히고 합쳐져서 새로운 것으로 탄생하듯 통섭과 융합의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인 지식으로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며 그런 지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29쪽)
학교 수업은 입시를 잘 치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이 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수업에서 만들어진 능력과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 자신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를 더욱 발전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에서 '지식'만을 다루고, 암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지식의 가치는 무엇인지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능력과 그 생각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아이는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공동체의 굳건한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31쪽)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는 법,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 등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방법을 학생들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자신들의 규범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37쪽)
교사들이 서로의 수업을 공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것은 그동안 교사의 수업을 보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교권 침해라는 인식이 대부분의 학교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자가 앞장서서 수업을 바꾸는데 열정을 쏟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수업을 하지 않는 관리자가 '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수업에 개입하는 순간, 교사들은 항거한다. 절대로 교실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수업의 변화는 관리자가 아닌 교사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앞장선 사람이 먼저 수업을 열어야 한다. 특히, 부장들이 앞장서서 수업을 열어야 나머지 교사들도 저항 없이 수업을 열게 된다. 부장 중에서도 수업을 열었을 때 가장 교사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부장은 교무 부장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관리자 다음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학교의 업무를 총괄하고 학교에 대해 교사들 중에서는 가장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교무 부장이 앞장서서 수업을 열었을 때 교사들은 수업 공개를 자신들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가장 바쁘고 연륜도 많은 교부 부장이 수업을 열었는데 어느 교사가 열지 못한다는 말인가 하는 인식이 교사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94쪽)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서 교사의 역할은 '가르치기'가 아니다. 교사의 역할은 '경청'과 '연결 짓기', '되돌리기'로 크게 분류된다. 잘 배우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다. 교사는 가르침의 전문가가 아니라 배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평생 배우는 태도를 기른다. 수업 속에서 교사는 오감을 깨워 학생들에게 경청해야 한다. 학생들이 활동을 하면서 중얼거리는 것,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 물어보는 것 등 귀로 들리는 말소리에서부터 귀로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어야 한다......오감을 깨운 경청과 학생들과의 소통이 교사의 경청을 이끌어 낼 수 있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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