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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발길이 머무는 곳

<강진여행>영랑의 봄은 가버렸을까? 영랑생가에서

퇴근 후 부지런히 길을 달려 영랑생가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 56분


6시면 문을 닫는단다.

이를 어쩌나?

맘먹고 직원 4명과 나선 길인데....

보성에서 왔다고,

모란피는 모습을 보러 왔다고,

흰모란을 보러 왔다고

사정 이야기를 하니

그럼 잠깐만 사진을 찍으랜다.

4분 가지고 그 감흥을 느끼기에 가당키나 한가?

맘씨 좋은 시문학관 관장님이 둘러보랜다.

문단속을 하러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는 친절한 말씀과 함께....


그렇게 하여 보게 된 모란이건만

모란은 지는 중이었다.

그 크고 붉은 꽃송이를 뚝뚝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핀 꽃송이도 힘없이 축 늘어진 모양이다.

절정을 지난 모란

어제만,

아니 그제만 왔더라면...

아쉬움에 사로잡혀 봐야 소용없네.




오랜만에 와 보는 영랑생가였다.

작년에도 퇴근 후 가 보니 이미 문이 닫혀있어서

고성사와 보은산방만 보고 나섰었는데...

블러그 친구가 곡우 때 본 영랑생가의 모란을 너무 예쁘게 찍어 올렸기에

나도 가봐야지

벼르다가 나섰는데...

이렇게 쉽게 져버릴 줄 몰랐다.

허망한 꽃이여.

그대 이름은 모란이로다.


영랑은 평생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살만큼 부잣집 아들이었다 한다.

일본 유학도 했고.

그 당시 시골에서 이런 큰 집을 가질 정도의 경제력이 있었던

부유한 지주의 자식이었다고 한다.


안채도 사랑채도 행랑채 주변에도

온통 모란이다.

잎도 크고 꽃도 크다

시든 모습이지만 연초록 이파리 위에

붉은 모란이 선명하다.

모란이 피는 시기에는 처음 왔기에

비록 지는 모란일 지언정

좋다




새로 돋는 연초록 담쟁이 덩쿨과

붉은 철쭉의 대비가 선명하다.

허나 그 빛이 아무리 곱다 한들

아래 보이는 목련만 하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수많은 가수가 리메이크를 했다.

장사익도, 심수봉도, 한영애 버전도 다 좋지만

그래도 원곡만은 못한 곡,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려본다.


시인의 봄날은 모란이 지면 가고

가수의 봄은 꽃따라 흐르누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꽃이 뜨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