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단 사흘만이라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무엇이 가장 보고 싶은지 상상해 보면서 시력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은 당연히, 어둠 속에서 살았던 세월 동안 제게 가장 소중했던 것입니다. 눈을 뜬 첫날, 저는 제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준 친절하고 다정한 제 동반자들을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랑하는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은 저와 바깥세상을 이어 주신 분이지요. 단순히 얼굴 보는 것을 넘어, 저를 가르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신 선생님의 인내와 사랑의 살아 있는 증거를 그 얼굴에서 찾아내고 싶습니다.
첫날은 아주 바쁜 하루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그 얼굴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새겨야 할 테니까요. 또, 아기의 얼굴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아보고, 저를 지켜 주는 애견들의 충직하고 믿음직한 눈도 보고 싶습니다. 제 눈은 제가 읽었던 점자책들에 머물 테지만, 비장애인이 읽는 일반 책들에 훨씬 더 관심을 갖겠지요. 제 인생의 긴 밤 동안 책들을 제 삶의 빛나는 등대가 되어 제가 사람들의 삶과 정신에 다가가는 가장 깊은 통로를 비춰 주었습니다.
첫날 오후에는 숲 속으로 산책을 나가, 대자연이 펼쳐 보이는 찬란한 모습을 몇 시간 안에 받아들이려고 애쓰면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인간이 시력을 늘리기 위해 발명해 낸 인공의 빛을 보는 또 다른 기쁨을 경험하겠지요. 볼 수 있게 된 첫날 밤 저는 좀처럼 잠들지 못할 겁니다. 가슴에 낮의 기억들의 가득 차 있을 테니까요.
이튿날, 볼 수 있는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을 떨리는 마음으로 보겠습니다. 태양이 잠자는 지구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파노라마를 감탄하며 지켜볼 겁니다.
이날 저는 과거와 현재 세계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하겠어요. 인류가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요. 어떻게 하루에 다 할 수 있느냐고요? 물론 박물관을 통해서죠. 전에는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제 눈으로 지구와 그 주민들이 이땅에 펼쳐 낸 역사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겠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이 세계의 물질적 측면을 보여 준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인간 정신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 줄 겁니다.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손으로 만져 알고 있던 작품들을 이제는 직접 눈으로 봅니다. 원시 시대 그림부터 현재 작품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그림의 세계가 훨씬 더 빛나는 모습으로 제게 다가올 겁니다.
둘째 날 저녁은 극장이나 영화관에서 보내겠어요. 햄릿 같은 멋진 임물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제 손이 느끼는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움을 즐겨 보지 못했어요. 연극 공연이 진행되면서 배우들이 대사와 동작을 서로 주고받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면 분명 즐겁겠지요! 둘째 날 밤 내내 연극에서 만난 위대한 인물들이 제 꿈속을 채울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76쪽에서 옮겨 적다.
(이 글은 1933년 월간 애틀랜틱 1월호에 실린 헬렌 겔러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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