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사랑
‘한 대상에 대해 앎이 많아지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깊어지면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요즘 저는 뻐꾸기란 녀석에 푹 빠졌습니다. 관사 근처에서 자주 울어대거든요. 녀석은 알다시피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가 하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다른 녀석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비정한 놈들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의 이런 행동도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한 부분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은 몹시 비바람이 거셌습니다. 녀석은 그 모진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쉬지 않고 울어댔습니다. 아침 5시에 시작하여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새끼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부모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2초 간격으로 울어대던 녀석은 한 곳에서 100번도 넘게 울어댑니다. 아마도 녀석은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 알을 낳았나 봅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순차적으로 울어 댑니다. 큰 울음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는가 싶더니 저 멀리서 아스라이 들립니다. 결국에는 긴 여운만 남습니다. 알을 낳는 반경이 생각보다 넓네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녀석은 한 곳에 알을 하나씩 낳습니다. 한 번에 12~15개를 낳는다고 하니 둥지도 그 수 만큼이겠지요. 일정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웁니다. 바쁠 때는 날아가면서 울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새끼가 컸는지 한 곳에서 우는 횟수가 적습니다. 분주해졌나 봅니다.
내가 지켜본 녀석은 근면과 성실성, 책임감을 갖추었습니다.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울기 시작하여 어두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쉬거나 그만두지도 않습니다.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둥지를 틀지도 않습니다.
녀석이 어찌하여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녀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니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깊어지다 보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쓰신 글입니다. 관사에 살면서 뻐꾸기나 산비둘기 소리를 듣고 살지만 나는 듣는 것으로 끝나지, 이런 글을 쓸 줄 모릅니다. 관찰하고 분석하기 좋아하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날 수 있는 부지런한 교장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지요. 멋져요.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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