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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감동이 있는 글

안타까운 사랑의 세레나데

나는 관사에 산다. 학교 안의 관사라는 게 비슷비슷한 사각형 모양이다. 섬에서 근무하던 99년에는 지은지 25년된 관사에 살았었다. 벽돌로만 지어진 집이라서 보온이 거의 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창문에 이불을 둘러 커튼 대용으로 해도 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하루 종일 보일러를 틀어 놓아도 방은 펄펄 끓고, 공기는 차가워서 감기 걸리기 딱 좋게 추웠었다. 부엌은 기존의 연탄 아궁이가 그대로 놓여있었고,(물론 난방은 기름보일러였지만) 싱크대도 없는 곳에서 쭈그리고 앉아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요새는 교육청 별로 연립관사라 하여 아파트 형태의 사택이 있다. 보성에도 몇 군데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공급은 늘 부족한 편이라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서도 단 한 분만이 연립사택에 살고 있다. 


현재 내가 사는 곳은 섬에서의 관사와 비교하면 무궁화 7개짜리 호텔급에 속할 정도로 좋은 곳이다. 작년에 화장실 리모델링을 하여 시설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택 특유의 난방이 안되는 관계로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내리쬐는 직사광선으로 밤새 덥기도 하다.


학교 안 관사 3동은 나란히 모여있어 덜 쓸쓸하기도 하고, 덜 무섭기도 한다. 이 학교에 발령받은 공통점 하나로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다 보니 간혹은 어제처럼 내가 약속으로 보성에 나간 날은 교장선생님이 찾기도 하신다.


그런 날은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찾다가 종종 이런 글을 완성해 주시기도 한다. ㅋㅋㅋ


내일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운동회 날이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비가 많이 내렸다. 당초에는 운동장에서 진행하기로 계획했으나 체육관에서 하기로 예고한 상태다. 체육관에서 하면 혼잡한 주차가 예상된다. 체육관 앞에는 학부모와 지역민을 위한 천막을 치기로 되어 있어 학부모들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의논 끝에 교직원들은 운동장에 주차하고 학부모들에게 주차공간을 내주기로 하였다. 오후에 시설관리 주무관과 함께 밧줄과 농기구를 활용해 주차선을 그려놓았다.


저녁을 먹고 8시쯤 교감 선생님의 차가 보이지 않기에 혹시 그곳에 차를 옮겨 놓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어둑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가서 확인했으나 차는 보이지 않고, 운동장 가득 개구리소리만 요란하다. 100미터 남짓 떨어진 논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목 놓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녀석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던 터라 가까이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교문 밖을 나서고 큰 길을 건너 물이 고여 있는 논 근처로 갔다. 여기저기서 대합창이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녀석들의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저 녀석들은 목이 쉬지도 않나 하는 괜한 걱정도 해 본다. ‘사람은 목이 아프면 날계란도 먹고 병원에도 가는데......’하는 생각에 이르자 헛웃음이 나온다.


개구리들이 우는 이유는 비가 내려 물웅덩이가 생겼으니 빨리 짝을 짓자고 암컷에게 구애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반의 벤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내 님은 누구일까? 디에 계실까? 무엇을 하는 임일까 만나보고 싶네. 갸름한 얼굴일까? 도톰한 얼굴일까? ~

 

내가 만약 암컷이라면 누구를 상대자로 맞이하지?’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 개구리들의 음색을 구별하려고 귀 기울여 보았다. 쉼 없이 나 여기 있노라고 개골개골개골개골……계속해서 큰소리로 외쳐대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굵은 톤으로 가끔씩 개개개개골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수컷들은 2세를 남기고자 저렇게 외쳐대는데 암컷들은 뭘 그렇게 재고 있지?’하는 생각에 이르자 미운 생각마저 든다.


개구리들이 오늘처럼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날이면 남자의 처지에서 수컷 동물들의 구애행위가 생각난다. 사자나 사슴, 바다코끼리 등 큰 동물들은 힘겨루기를 통해 암컷을 차지한다.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치열한 싸움을 한다. 이에 비해 새들은 구애행위가 다양하다. 공작처럼 날개를 멋지게 펴서 구애행위를 하는 새들이 있는가 하면, 학처럼 암컷 앞에서 멋지게 춤을 추어 짝을 찾는 새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밀림의 새처럼 멋지게 집을 지어놓고 암컷을 기다리는 녀석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카나리아처럼 멋진 목소리를 뽐내어 짝을 찾는 새들도 있다.


그 뿐인가? 유연한 날개 짓으로 비행을 뽐내어 구애하는 놈들도 있고 물고기를 물어다 바쳐 구애하는 새도 있다. 이 녀석들은 장차 태어날 새끼들을 굶기지 않고 가장노릇을 잘 할 것인지에 관심을 두는 현실적인 놈들일 게다. 새들과 달리 개구리들은 크고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야 암컷의 관심을 갖는가 보다. 하기야 개구리들은 알을 낳기만 하면 올챙이가 저절로 자라기 때문에 새끼를 키울 일도 없고, 집을 지을 필요도 없다. 덩치 큰 동물들처럼 처절하게 싸울 필요도 없다. 설령 힘세고 덩치 큰 녀석이 암컷을 차지하겠다고 해도 둘이서 물속으로 잠수하면 찾을 수도 없지 않는가? 수컷끼리 싸우다가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우습기도 하다. 그러다간 천적들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고 씨가 마를 것이다. 그야말로 녀석들은 비가 오면 빨리 짝을 찾아야 하는 숙명 때문에 울음소리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진화했는지 모르겠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배우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이는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지만 같은 수컷의 입장에서 조금은 슬퍼진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궁금해서 10시쯤 나가 보았다. 개구리 소리가 다소 잦아들었다는 느낌이다. 그 사이 짝을 많이 찾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다른 녀석들도 모두 빨리 짝을 찾기를 바라며 관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장에 이르자 머리 바로 위에 북두칠성이 또렷이 떠 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11시 반이 조금 넘어서 가보았을 때는 개구리소리가 조금 더 줄어들었고, 다음날 아침 5시에 논에 가보니 그때까지 노래 부르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짝짓기에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니 어제 저녁 안타까움이 흐뭇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녀석들도 밤새도록 노래를 불러 피곤했으니 단잠에 빠져들었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