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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발길이 머무는 곳

<서울여행> 남산의 추억

2015.09.09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따라 서울 남산에 다녀왔다. 작년 세월호 이후 대규모 수학여행이 지양되면서 우리 학교도 버스타고 가던 여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녀왔다. 보성에서 순천까지는 학교버스로 이동, 순천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용산역까지 이동했다. 2시간이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까마득하게 먼 서울이 어느새 두 시간대로 바뀐 것이다. 세월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아이파크몰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신용산역으로 이동, 지하철을 이용하여 남산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맨 처음 봉수대가 우리를 반겨준다. 서울의 심장부에 있는 봉수대답게 외관부터가 매끈하게 잘 생겼다. ㅎㅎ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

한가운데 가장 목 좋은 곳에 과자점이 자리하고 있다.

꼭 이래야만 했나?

오랜만에 서울간 촌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

 

 

남녘에서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올라온 탓인지 피곤이 몰려온다.

앉아서 쉬는 저 분들 사이에 끼어 꽤 오래 앉아있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저 넓은 곳, 저 많은 집 들 사이에 우리 집 하나가 없다는 그런 생각? ㅋ

 

내가 남산을 맨 처음 찾은 것은 대학 3학년때였다. 2학년 때 나랑 자취하다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온 친구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케이블카도 없던 그 시절, 걸어서 남산을 올랐다. 무척 더웠던 여름날이어서 땀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로 올랐던 때는 가족여행으로 왔었다. 과자점이 높인 한 쪽에서 섹스폰 연주를 하던 중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행렬의 불빛을 보며 섹스폰 연주를 들었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도 들었고 고한우의 '암연'도 들었다.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랑'도 있었던 듯 하다. 음악과 불빛과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는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도 잊었었다. 섹스폰 연주는 한 시간 내내 이어졌고,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는 대학을 광주에서 다녔다. 처음에는 인천으로 가려고 했다. 서울교대는 너무 높았고, 광주에는 연고가 없었다. 물론 서울에도 연고는 없었다. 그런데 먼 친척 언니가 서울 서초구에서 화원을 하고 있었다. 일손도 돕고 대학도 다니고 서울로 왔으면 한다는 의사가 전해졌다. 그런데 서울교대 갈 실력이 안되었다.  써 보면 어찌 될 것도 같은 희망은 있었으나, 떨어지면 일 년을 재수할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인천교대를 쓴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서울 서초구와 인천은 엄청난 거리여서.....거절한 언니의 입장을 이해하고도 남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었다. 어쨌든 나는 이미 써버린 인천교대 원서를 학교장 직인을 찍어 수정한 후 광주교대로 제출했고 그곳은 나의 모교가 되었다.

 

그때의 내가 인천에서 자리를 잡았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당장 내년도, 내일의 일도 모르면서 나는 가 닿을 수 없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많이 울적해했다. 수많은 판단과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인생.....그때의 선택은 내 인생의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하등 도움 안되는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랐던 건 음악이 주는 지나친 감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ㅎ

 

많이 쉬었는지 그새 노을이 내려앉았다.

 

 

오늘 우리 아이들의 저녁 메뉴는 남산 아래에서 유명하다는 왕돈까스 집이다. 음식도 맛깔스러웠지만 나는 오른쪽에 있는 막걸리병에 꽂혀버렸다. 왼쪽에서 두번째, 개도막걸리가 있었다. 개도...개도...개도.  내가 서른 중반부터 3년을 근무한 섬 이름이다. 작은 섬은 아니었다. 섬 치고는 물도 많아서 주조장까지 있었다. 막걸리는 술을 잘 하지 못하는 내 입에 잘 맞았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나만 알고 있었던 그 개도막걸리가 지난 번 <1박 2일>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모양이다. 나만의 개도를 빼앗긴 느낌도 들고, "내가 저 곳에서 3년을 살아냈어. 아이 셋을 데리고 용감하게" 자랑도 하고 싶었던 그 개도의 흔적을 여기서 만나니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여전히 케이블카가 다닌다. 야경을 보았더라면 더 멋졌을텐데.... 다음번 남산여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