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영광 불갑사에 갔습니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꽃,
그래서 슬픈 꽃 꽃무릇(일명 석산이라고도 불리는)을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9월 중순경,
여름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있긴 하지만
어쩐지 강렬한 태양 한곳에서 가을의 향기가 슬쩍 배이기도 하는 이때면
전라도 몇 군데는 꽃무릇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가 그곳이지요.
두 곳은 이미 다녀온 곳이고,
오늘은 미처 가 보지 못한 한 곳, 영광 불갑사로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제가 사는 순천에서 영광을 가려면,
전라남도 끝에서 끝을 가는 편입니다.
광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목포로 돌아가던가
질러서 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맘먹고, 먼 길 나섭니다.
입구에서 본 상사화 주제의 시화전
-상사화와 꽃무릇은 엄연히 다른 꽃인데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선지 여기서는 섞어서 썼네요.
제가 알기로 상사화는 봄에 피는 연분홍 꽃인데요.
사람이 무지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들어오고 나오는 입구 곳곳에
공무원들이 서서 길안내며, 셔틀 안내를 부지런히 해주는 덕에
심한 체증은 없었습니다.
여타의 축제보다는 정비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통기타공연이나, 노래공연, 체험꺼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이 분은 노래하는 스님 '무산스님'입니다.
가요도 팝송도 어찌나 잘하는지 저절로 발길이 멈추어졌습니다.
세랍을 궁금해해서는 안되겠지만,
연세가 꽤 되신 것 같은데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시주하는 셈치고 음반도 하나 샀는데 들을 때마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one Summer Night" 이 가장 좋았지요. ㅎㅎ
시, 수필 인터넷 공모전도 하네요.
지리산 아줌마 응모해보세요.
9월의 불갑사는 온통 꽃무릇 천지가 되었습니다.
꽃무릇
정성수
꽃무릇 피는 곳은 죄다 절집이다.
불갑사도 그렇고
용천사도 그렇고
선운사도 그렇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그리워하다가
꽃이 되었다는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못 잊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선운사 절집으로 들어가는 어둑한 숲
그늘에 가을볕 비껴들면 선혈 낭자하게
붉은 빛 토해내는 꽃무릇. 천지다.
세상의 꽃들은 봄부터 가지마다 잎을 내놓고
제 이름이 호명되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뜨겁던 한 철을 건너 와 조석 바람 서늘하면 연둣빛
꽃대를 밀어 올려 피는 꽃.
그 여자의 속눈썹처럼 길게 굽은 꽃술의 붉은 자태에
가을이 넋을 잃으면 이 순간만은 나 또한 죽어도 좋겠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어라. 그러나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동안 활활 타는 그리움으로
서로에게 사랑의 불 옮겨 붙는 중이다
선운사 도솔천을 따라가면서 무릇 붉은 집은
그여자와 한 살림 차리고 싶은 집이다.
절집인들 어떠랴
우리처럼 단순한 탐방객도 많지만
불갑사 뒷산을 이용한 등반객도 엄청 많았습니다.
내년에는 등산에도 도전해보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백수 해안도로에 들렀습니다.
드라이브 코스로 끝내준다고도 하고,
노을전시관에서 보는 노을이 끝내준다고도 하고,
나무테크로 놓인 산책로도 좋다고 하는데요.
아쉽게도 그 길은 너무 짧습니다.
남해나 여수의 해안도로에 비해 지나치게 짧아서 아쉬운 길.
그래도 좋았습니다.
여름보다 순해진 햇살 아래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으로
9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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