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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백숙 한마리가 남긴 반성문

 

여름방학이 시작되고는 더 시간이 없어서

블러그 관리를 통 못했습니다.

블러그 소재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사진도 찍지 않고,

그냥 그냥 넘어가 버렸구요.

 

오늘 모처럼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입니다.

어찌나 신기한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지요. ㅎㅎ

 

방학을 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아들이 이제서야 집에 왔습니다.

그것두 친구만나러 왔는지

오자마자 짐 꾸려 2박3일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지요.

'동남아인'이 되어서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저녁 메뉴로 준비한 것이 백숙입니다.

토종닭 한 마리를 삶아서

아들과 아버지가 나란히 먹었는데요.

아들의 아버지이자,

제 남편이 남긴 뼈가 이 모양입니다.

 

평소 남편은 '꽁생원'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이 아끼는 편입니다.

내가 켜 둔 불을 따라 다니면서 끄고,

혼자 있는 방에서는 TV만 켜 두고 불은 켜지 않지요.

"안그래도 눈 어두운 마누라 답답해서 못 산다"

안경쓴 마누라의 핀잔을 듣고서야 불도 켤 정도지요.

구두는 한 켤레 사면 5년 이상은 기본이고,

등산바지나 티셔츠도 만원 짜리 입기를 예사로 합니다.

본판이 좋아서 아무거나 걸쳐도 명품으로 보인다는

자뻑만 없으면 더 좋으련만...ㅎㅎㅎ

 

그러나 부자는 되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제가 있기 때문이지요.ㅎㅎ

저는 남편과는 반대로 쓰는데는 귀신인데다

남들을 퍼줘야 나에게도 들어온다는 독특한 신념의 소유자(?)라 생각없이

있으면 있는대로 막 쓰고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 쓰는 사람이거든요. ㅎㅎ

은행에서 돈 빌릴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이렇게 외치면서요.

 

당연하게도 음식도 먹다가 남으면

억지도 먹다가 탈나기 보다는 버려버리는 편을 택하고,

생각없이 산 재료들이 냉장고 한 구석에서

썩어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요.

 

어쨌든 나와는 많이 다른 남편의 이런 성격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백숙 한 마리는 어디로 가버리고

뼈만 남은 접시를 보노라니

웃음이 한없이 나옵니다.

 

"여보, 미안해.

이런 속없는 나랑 이십 년 넘게 살아줘서 고마워"

 

뼈만 남은 백숙을 보고 이런 반성문까지 쓰게 될 줄이야...

뼈만 남은 백숙이 저를 가르치네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