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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여권에 도장 찍으러 가는 길

인도여행기 3탄

 

부처님의 땅, 바라나시로 밤기차를 타고(3: 818)

 

 

 

저녁을 먹고는 델리 역으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야간열차 에어콘 클래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는 날이다. 기차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포터들과 짐 나르는 것을 흥정한 후, 우리는 겁에 질린 아이들처럼 사람들 홍수를 뚫고 기차를 타야했다. 미로처럼 줄을 선 그 많은 사람들이 탈 자리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역에서도 자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형국으로 봐서는 영락없이 우리나라 축제날처럼 보이는데, 남루하고 비루한 옷차림만이 이곳이 인도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에어콘 클래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열차의 시설은 형편없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 병원에 놓인 간이침대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한 칸에 2층 침대가 창문 쪽을 뺀 3면으로 각각 한 개씩 놓여있어 6명이 잘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방을 침대 아랫칸에 밀어넣고 각기 침대 배정을 하였다. 우리 맞은 편에는 여행자인 우리보다 더 많은 가방을 침대 아래에 가득 밀어넣은 풍채좋은 군인이 있었다. 43살이라는 그 군인은 파키스탄 접경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집이 있는 바라나시로 2개월간의 휴가를 얻어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6개월만에 집에 가는 탓인지 시종일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17살 때부터 군 생활을 했다는 군인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시간은 잘도 갔다.

 

인도에서는 기차역에서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저씨, 가방 속에서 럼주를 내민다. 알콜돗수가 42도나 된다. 우리 나라 기차의 홍익요원처럼 인도의 기차에서도 짜이나 간단한 과자를 파는 사람이 지나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인도말로 뭐라고 하니, 곧 달걀 후라이 2개가 배달되어 온다. 그것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특이한 건 럼주에 사이다 같은 걸 타서 마시다가 사이다가 떨어지니 물을 타서 마시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연신 권했지만, 그 독한 럼주를 흔쾌히 받아마실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군인아저씨,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South Korea?"라고 묻는다. 군인답게 분단의 우리 상황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인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Korea"를 모른다고 하여 우리를 서운하게 하였다. 중국이나 일본을 아느냐고 물으면 잘 안다고 하면서도, 그 사이에 낀 나라가 한국이라는 건 아무리 설명하여 줘도 모르는 눈치였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한국을 모르다니? 아무리 여자들의 문맹률이 40%가 넘는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빨리 지금보다 더 국력을 키워, 세계 속의 대한 민국으로 뻗어나가야 하지 않나? 마음이 조급해진다.

술자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밥을 시켜 먹는다. 8절 도화지 정도의 크기의 쟁반에 배달되어 온 도시락에는 한 쪽에는 카레 비슷한 게 담겨있고, 한 쪽에는 짜파티라고 부르는 빵이 담겨있다. 오른 손으로 그 빵을 떼어 카레 비슷한 국물을 감싸서 먹고 있다. 포크나 숟가락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이 주신 오른 손가락 만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의 오른손을 밥 먹는 손, 왼손은 볼 일을 처리하는 손이라는 걸 미리 알고 가서인지 그런 모습들이 그다지 낯설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왼손으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면 불쾌하게 여긴다는 말도...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리 나라 같으면 밥을 먼저 먹고 술을 마실 것인데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이것도 여행기를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인도인의 습성을 모르는 나의 무지로 드러났다.

인도인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았을 경우에는 미리 약간의 음식을 먹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외국인과 많은 접촉을 하는 사람은 ‘7시에 와라고 했으면 730분 정도에 음식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저녁 9~10시가 되어야 식사를 한다고 한다. 원래 인도인들의 저녁식사 시간은 저녁 10시경이 정상이라고 하니, 군인 아저씨는 제 시간에 저녁식사를 하는 셈인 모양이다.

 

우리가 인도 오기 전에 들은 여행 정보에는 이런 밤기차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자전거를 매는 체인으로 가방을 묶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린 다행히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바로 옆 침대칸에 6명의 경찰이 우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우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바로 옆 칸에 이 나라 국회의원이 타고 계신다나...그럼에도 금지된 술을 마시는 이 군인은 누구일까? ‘이 이야기해준다. 이 나라에서는 경찰보다는 군인이 더 높다고. 그래서 보고도 못 본 척 아무 말도 못하는 거라고. 이래저래 우린 복이 터졌다. 먼 인도에서 경찰과 군인의 호위를 한꺼번에 받게 되었으니.... 덕분에 우린 치안에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기차는 너무 추웠다. 밖은 찌는 듯 무더운데 냉방은 너무 한 탓에 자다가 추워서 깨어났다. 긴 옷을 껴입었으나 너무 추워 아침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직 술기운을 빌었는지 인도 군인 아저씨만 한밤중이다. 먼저 일어난 선생님들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창 밖에는 5, 60년대 우리 나라 시골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낮은 지붕, 초록이 넘치는 들녘, 마을 공동의 우물에서 펌프질하는 사람들, 헤잡을 머리에 두르고 물을 길어오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훅 느껴졌다. 우리를 더욱 신기하게 한 건 플라스틱이나 놋쇠로 된 로따(lota)라고 불리는 물그릇을 하나씩 들고 들 가운데서 일을 보는 것이었다. 인도의 화장실에는 어디든지 수도꼭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이런 로따가 준비되어 있었다. 엉덩이를 기차가 지나가는 사람들 쪽으로 하고, 얼굴을 숲 쪽으로 돌려놓은 모양새라 우린 너무나 다른 이 나라 풍습이 그저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간의 연착을 포함하여 무려 13시간만에 바라나시에 도착하였다. 역을 나오자마자 구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우릴 반긴다. 어디나 외국인이 가는 곳은 그런 모양이다. 버스가 서는 걸 보고는 멀리서도 달려온다. 가이드로부터 교육을 잘 받은 우리들은 아무도 지갑을 열지 않는데도 습관처럼 그네들은 손을 벌리는 듯하다.

 

오후에는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땅으로 유명한 사르나트(녹야원)로 갔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81.3%가 힌두이고, 12%가 무슬림이라고 한다. 그 외 시크교(2%), 소수의 기독교와 불교인구가 있다고 한다.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라고 하는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 정작 불교는 그 존재가치가 미미한 것이다.

 

박물관은 더 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이었다. 들어오고 나올 때 수색하는 것이 약간 철저했다 뿐, 냉방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곳에, 너무나 부실해보이는 유리문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우리 눈에 익숙한 부처님들의 다수가 손이 잘리고, 코가 깎이고, 다리가 잘린 형상이라는 것이다. 12세기 이슬람의 침입을 받고 무참히 파괴된 것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 종교는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현재 인도의 대표적인 종파인 힌두와 무슬림(이슬람교도) 사이에도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단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결혼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교류도 무척 드물며, 같은 도시에서도 서로의 거주구역이 다를 정도로 격리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생활관습에서도 많은 힌두들은 터번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 묶지만, 무슬림들은 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손을 씻을 때도 힌두는 손끝에서 팔꿈치 쪽으로 올라가면서 씻지만, 무슬림들은 팔꿈치부터 손끝으로 내려간다. 힌두들은 화요일을 종교적인 날로 생각하지만, 무슬림은 금요일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는 종교가 이처럼 다른 두 집단이기에 인도에서는 종교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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