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즈강에서 세속의 때를 씻고, 카주라호로 이동하여
인도 에로틱 예술의 정수 카주라호 관광(제4일: 8월 19일)
드디어 갠지스강이다. 인도인들이 ‘생명의 물’ 그리고 ‘성스러운 물’로 생각한다는 그 갠지스강에 말이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듯이 역시나 물은 흙탕물이다. 오염이 심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물로 목욕을 하고 입을 헹구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천상을 흐르던 갠지즈강이 가뭄에서 고통받는 인간세상을 위해 지상으로 끌어내린 강이라는 그들의 믿음 때문일까? 육체를 지배하는 건 정신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가 탄 배에는 두 명의 사공이 양 쪽에서 젓고, 선주로 보이는 한 명은 배 뒷머리에 서 있다. 북쪽 화장터로 간다. 멀리 흰 연기가 나는 곳이 화장하는 곳이라고 한다. 화장한 유골을 이 곳 갠지즈강에 뿌리면 내세에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존재하는 세계, 특히 인간의 일생을 ‘모기의 날개치기’와 같이 여기는 힌두교가 가족과 가정에 충실한 삶을 통해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삶을 공허한 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꿈을 좇으며 살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혹은 이루었다고 해도 그것을 누릴 여유가 없이 죽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음의 평안이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의 이유로 종교를 갖는 대다수의 인간의 모습은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높은 정신의 세계를 일개 범부인 우리들이 잠깐의 여행을 통해 그 훈김이나마 느낀다는 게 무리이리라 싶다.
멀리 구름 사이에서 해가 솟았다. 배는 남쪽을 향해 순항한다. 바람이 서늘하다. 우기라서 1층이 물에 잠긴 사원이 여럿 보인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생과 사의 모습이 이다지도 다르다니... 그들만의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각기 생각에 잠긴다. 사람에게만 정화작용을 하는 물은 아닌 듯, 멀리 지붕위나 거리에 원숭이와 염소, 개, 소, 말, 까마귀도 보인다. 물이 튄다. 갠지즈강의 물이 튀어 우리들의 옷자락에 부딪힌다. 이 물방울들로 하여 우리들의 영혼도 다소나마 정화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배에서 내려 바라나시의 유명한 골목길을 걷는다. 아직도 잠에 취한 채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있고,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 사람, 옷을 입은 채 목욕 하는 사람, 장사 하는 사람들로 골목길 역시 붐빈다. 인구 10억이 넘는 인도에서 붐비지 않는 곳 그 어디랴? 군데군데 말이 끄는 수레도 보이고, 인도가 천국인 소들의 배설물이 거리에 널려있다. 그 배설물들을 널뛰기하듯 건너뛰며 버스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 식사 후 잠깐의 휴식을 가진다. 호텔 정원에서 요가체험이 있다고 안내했지만 우리는 연속된 4끼의 호텔식에 지쳐있는 입맛을 돋우기로 한다. 가지고 온 햇반과 라면에 깻잎반찬, 김치, 김과 멸치에 고추장을 반찬 삼아 오랜만에 포식한다. 역시 우리는 토종 한국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며.....
오후 일정인 카주라호(Khajuraho)로 가기 위해 바라나시 공항으로 이동한다. 검색이 철저하다. 국내선 비행기 한 번을 타는데 몇 번을 검색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화장품, 립스틱까지도 기내반입이 금지란다. 30분이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카주라호에 내리고 보니 먼저 드물게 깨끗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극히 평범한 농촌 마을이지만 사원 때문에 관광객들은 꽤 많이 찾는 도시라고 한다. 우리가 묵을 호텔도 호텔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아담한 펜션의 수준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체크인을 한 후 3시 30분에 관광에 나선다. 거리는 지금까지 봤던 어느 도시보다 깨끗하였다. 또 손내밀며 달라들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오늘 관광할 곳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동군,서군의 힌두사원군’이다. 이 사원이 지어진 것은 찬드라 왕조의 전성기였던 서기 10C와 11C였으니 지금부터 1,000년 전의 일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쏟아진다. 장대비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활기차기만 하다. 현지 가이드가 이유를 설명하여 준다. 사막의 도시 카주라호에 3년만에 내리는 비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겠는가? 곳곳에 가뭄이 심하여 고통받고 있었는데 우리의 여행날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다니....우산을 써도 고스란히 옷이 젖는 장대비였지만 함께 기뻐하였다. 얼굴은 새카맣고, 눈만 커다란 아이들이 기쁨에 젖어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우릴 따라다닌다. 낮은 코, 작은 키 그들의 눈엔 우리가 분명 이방인이리라.
비 탓인지 사원내에는 관광하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여름 꽃들이 정원 곳곳에 피어있고, 잔디는 잘 정돈되어 있다. 푸른 잔디와 천년 향기를 뿜어내는 문화재가 넓은 땅에서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바람개비 모양의 흰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신선하다. 사원으로 가는 길도 잘 정비되어 있다. 어제 둘러본 사르나트 불교 박물관보다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사원은 미투나(Mithuna)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투나란 고대 인도 미술에 나타난 점잖게 말하면 남녀간의 교합의 체위의 조각들이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녀간의 갖가지 섹스 체위의 모습의 조각상들이다. 조각이 아니라 사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그 모습이 적나라하고 대담하다. 무생물 돌 조각에 살아있는 인간의 체온을 넣기 위해 조각가는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보기에도 민망한 조각들이 사원 벽에 한치의 틈도 없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잘록한 허리, 펑퍼짐한 엉덩이의 미인들이 우람한 근육질의 남성들과 대담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쭉 빠진 그들의 다리나 손 어느 한 쪽이 회교도인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있는 것이다. 얼굴의 정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코와 다리, 팔이 파괴의 대상이었다. 종교로 인해 인간의 위대한 건축물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리라. 한편으론 종교처럼 위대한 건 없다는 반증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