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저는 할머니를 참 좋아하는 손녀였습니다.
아버지가 무려 서른에서야 큰 딸인 저를 낳아놓고
늦은 군대를 갔답니다.
저는 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 출신(ㅎㅎㅎ)이면서
드물게 백일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되는데
백일사진을 가진 이는 저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 자라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군대에 있는 아버지께 보내기 위한 거였지요.
아무튼 저는 잘 생긴(?)남자아이의 모습으로 찍힌
백일사진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답니다. ㅎ
남편 군대 보내고 외로이 지내는 엄마랑 자지 않고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할머니를 좋아하는 손녀였습니다.
제 유년의 기억의 많은 부분은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인 게 많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밭에 갔다 오는 길이면
철길을 따라 오는 길이 집과 가장 가까웠습니다.
할머니는 철길을 따라오면서도 그냥 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철길에 놓인 버팀목(침목이라고 하던가요?)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 부스러기를 주으면서 왔습니다.
나무를 때서 난방도 하고, 밥도 하던 시절,
기름이 적당히 먹힌 침목은 좋은
불쏘시개 재료가 되었던 거지요.
오늘은 감자를 주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말했지요?
제가 사는 회천은 감자로 유명한 곳이라고요.
감자를 캐고 남은 자리에는
미처 캐 내지 못한 감자도 있고,
상처가 아주 작은 부분만 있어도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잘만 하면 맛난 감자를 고를 수 있습니다.
마침 학교 뒷산, 맛있는 감자가 나기로 유명한 밭이
감자를 캐고 난 뒤라서 감자 주으러 갔습니다.
비가 온 뒤라서 이렇게 장화로 폼을 냈습니다.
바다에 바지락을 캐기 위하여 거금을 들여
장화를 지난 봄에 구입하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장화가 바다는 구경도 못해보고
산에서만 놀게 생겼네요.
그래도 나름 신경썼어요.
빨간 장화에 빨간 장갑,
패션이 끝내주지요 ㅋㅋ
교장선생님과 재미있는 인증샷을 찍고
감자 주으러 고고~~~
(낭만을 아는 교장선생님 덕분에 제가 행복한 거, 아시죠?)
물기 머금은 논을 보세요.
장화가 왜 필요한지 아시겠죠?
이렇게 왕건이 묻혀있기도 합니다.
얼마나 오질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ㅎ
뻘이 많이 묻어서 씻어버렸네요.
이건 오전에 주워온 것이고요.
오후에 한 사람을 더 추가하여
네 사람이 또 주워온 양입니다.
삶으면 파근파근하면서도 맛좋은 회천감자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맛이 기똥차게 좋습니다.
캐서 먹는 것보다는 캐는 운치를 즐기고
여러 사람이 맛나게 나눠먹는 즐거움을 보면
저절로 배불러지는.....
그렇게 저의 행복이 오늘도 쌓여갑니다.
PS. (오늘의 소감 한마디)
감자........ 사 먹는게 쌉니다. 뭔 말인지 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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