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남부지방도 거의 대부분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감자로 푸르렀던 들녘도 감자 캔 자리에 모를 심고
방방하게 물을 채운 논이 대부분입니다.
오늘은 감자캐는 이야기를 해 보렵니다.
먼저 감자의 줄기를 사람 손으로 일일이 낫을 이용하여 잘라냅니다.
그러면 사진처럼 밑동만 남습니다.
감자캐는 일은 중노동이랍니다.
감자를 주워 선별하고 차로 옮기고 그런 일은 하는 남자의 하루 일당이 10만원이랍니다.
젊은 여자는 7만원,
힘이 좀 없는 연세드신 할머니들은 하루 일당 5만원을 받는답니다.
그 힘든 일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어르신들, 대단합니다.
감자 중에서도 수미감자는
삶아 놓고 나면 쩍쩍 벌어지는 맛좋은 감자로
간식용으로 최고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분이
밑동만 남은 부분을 기계를 이용하여 갈고 지나가면
감자만 이렇게 남습니다.
왼쪽에는 기계가 지나간 자리라서 감자가 보이고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곳은 감자 줄기 밑동만 있습니다.
제가 이곳 회천으로 오기 전에는
감자도 일일이 손으로 캐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기계(아둔하여 아직 기계 이름은 모릅니다)를 이용하여
캐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한때 섬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섬은 예나 지금이나 비탈밭을 이용하여 고구마를 참 많이 심습니다.
대다수는 사료용이나 제과용으로 그때 제 기억에는 한 가마니에
6천원씩 팔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관사 윗집에 저랑 친하게 사는 은혜엄마는 봄부터 고구마를 심고
비탈이 심해 지게로 일일이 지고 나른 고구마를
부둣가에 300가마니 실어두었지요.
섬 사람들 모두가 부두 곳곳에 자기 자리를 정해
수백 가마니를 쌓아두면,
어느 날인가 평소 보기 어려운 아주 아주 큰 배가 들어와서
한꺼번에 수매를 해 가곤 했습니다.
초여름 고구마 심을 때부터 늦가을까지 길러서
버는 돈이 백팔십만원쯤.
일년 농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팍팍한 수입이었지요.
특이한건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고구마를 캘 수 있게
파 주는 것이 기계가 아니라 소였습니다.
코뚜레 낀 황소가 '이랴이랴' 소리에 맞춰
좌로도 가고 우로도 가고 돌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의 일상을 기록해 두지 못한 것이 이순간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 감자캐는 모습 보니
십 오년 전 섬에서 고구마 캐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전남 감자의 집산지 회천을 떠나
십 오년 쯤 지나면 감자 먹을 때마다
오늘 회천에서의 나를 그리워하는 날이 있겠지요.
지나놓고 나서야 소중함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니까요......
ps. 회천감자는 회천우체국을 통해 구매가능하답니다.
검색창에 회천 우체국....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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