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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율포앞바다를 기록하다

벚꽃 날리는 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봄이 싫었다.

변덕스런 인간의 마음 같은 꽃샘추위도 싫었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도 무서웠고,

나른함 속에 감춰진 춘곤증도 짜증났다.

 

나이먹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예전보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일게다.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고.

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길이 가고

그것이 신비롭고, 고맙고, 기특하게 생각되는거다.

 

언 땅을 뚫고 여린 잎을 내보내는 진달래가 고맙고,

삐죽이 고개를 내 민 수선화가 말할 수 없이 신기하다.

 

 

 

필 때만 아름다운 줄 알았던 벚꽃의 낙화에도 눈길이 머문다.

차 보닛에 담긴 하늘과 벚꽃잎이 풍경이 되고

구르는대로 흐르다가 발 길 닿는대로

모닥모닥 머무는 저 분분한 낙화

(이형기 님 용서하소서. 제가 좀 따라 써도 되죠? ㅎㅎ)

 

 

 

 

 

 

 

 

이형기 - 낙화

 

 

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