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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율포앞바다를 기록하다

보성 회천면 명교리 들녘-자운영 꽃 가득한 봄날의 명교리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후, 율포 앞바다 탐방에 나섭니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발길 머무는대로 이리 저리

걷는 길이 쓸쓸하면서도 나름 행복합니다.

 

오늘은 나즈막한 야산 아래 이십여 가구 되는 마을이 있고

앞에는 탁 트인 율포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명교리를 갑니다.

밝을 명에 가르칠 교.

마을 이름에 가르칠 교가 들어있는 것이 좀 신기합니다.

풍수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마을의 위치는 명당입니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모양입니다.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마을 뒤에는 제법 잘 가꾸어진 가족묘가 서 너기 보입니다.

 

 

마을 앞은 봄이 한창입니다.

 

 

 

 

자운영 꽃밭입니다.

자운영은 들녘 아무데서나 만나게 되는 흔한 꽃입니다.

땅 힘을 좋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자운영을 심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예전에 비해 자운영 꽃밭을 보기는 어려운 듯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낚시하는 남편을 따라 봉강저수지 부근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낚시를 하고,

우산으로 적당히 볕을 가린 우리는 누웠다가 앉았다가

시종일관 먹다 오곤 했습니다.

누워있는 건 집 쇼파나 침대나 마찬가지인데도

돗자리 위에서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누워 있는 기분은 더할 수 없는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다가 지치면 저수지 옆 자운영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운영 꽃밭을 보면,

꼭 그곳에만 자운영꽃이 있었던 것처럼

봉강저수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멀지않아 자운영꽃밭은 갈아 엎어지고

물을 방방하게 채운 그곳에는 모내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 공선옥 작가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함께 읽어볼까요?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아이들 데리고 섬진강가로 놀러 나갔지요. 백사장이었던 곳에 제방을 쌓고 잔디밭으로 꾸며놓았더군요. 잔디밭에서 한참 동안 모래주머니도 던지고 강강술래도 하고 공도 차고 노래도 부르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이들 빌미삼아 어른이 하루 잘 논 폭입니다그려. 점심 먹고 강가로 갔지요. 놀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강가 습지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지 않겠어요? 그래요, 거기 꽃밭이 있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심어논 것은 아닌 게 분명한 꽃밭이었습니다. 바로 자운영 꽃밭이었지요. 군데군데 소들이 그 꽃을 뜯어먹고 있었고 강물은 한가롭게 흐르고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삽상하게 불어왔습니다. 나는 그만 이제 한창 불붙은 꽃밭에 내 몸을 던져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찾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못 들은 체하고 거기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습니다.  

 

 오월, 이맘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양쪽 논에는 자운영이 한창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꼭 자주색 비단이불을 펼쳐놓은 듯, 붉은 물감을 확 풀어놓은 듯, 꽃이름 그대로 자주구름 꽃밭이 꿈결같이나, 꿈결같이나 펼쳐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그 고운 꽃밭을 갈아엎고 모내기할 준비를 할 것입니다. 자운영이 피어 있는 논에는 항상 독새기도 같이 자라서 독새기 있는 데는 보드라운 잔디밭 같았습니다.  

 자운영 꽃밭은 너무나 고와서 함부로 드러눕지 못하고 독새기 풀밭에서 뒹굴다가 하늘을 보고 누워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지요.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파아란 하늘과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우풀어 오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오래 불러요.'  

 세상에나,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부른다면서 어찌 내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솟아나는지요.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푸른 풀밭과 붉은 자운영 꽃밭이 그 어린 눈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져서 울었던 것일까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람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꼭 그래서 울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집으로 가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여름에 어머니가 남의 선자 산 논(얼마간의 돈을 주고 일정 기간 임대한 논)에 멸구약인 줄 알고 제초제를 쳐버려서 우리집은 그해 양식 소출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겨울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식량이라곤 밭에서 난 고구마와 서숙 그리고 콩이 전부였으니까요. 봄이 되어 산야에 난 쑥을 뜯어다가 싸라기와 함께 풀떼죽을 쑤어먹었습니다. 우리집에는 그때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원래 주인은 다른 사람이고 우리가 그 소를 먹여주면 나중에 소새끼를 한 마리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소를 지극정성으로 돌봤습니다. 그 소에게 먹이려고 나는 아까 학교에서 오다가 누웠던 논으로 갑니다. 가서는 또 한참을 자운영 꽃밭에서 노닥거립니다. 들에서 일하고 온 어무니가 암말 안하고 자운영과 독새기를 싹둑싹둑 잘라가지고 내 곁에 가까이 오셔서 가만히 욕을 하십니다.  

 "호랭이 물어갈 것이 허라는 일은 안허고 한량굿이나 허고 자빠졌다"고.  

 그렇게 어무니와 함께 꼴망태기 메고 집으로 오는 저녁 나절에 웬 쑥꾹새가 그리도 울어쌓는지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싱그럽고도 안타까운 오월 저녁의 냄새가 울엄마 냄새올습니다그려. 구슬프게 울어쌓던 쑥꾹새 소리가 울엄마 소리올습니다그려.  

 온 들에 흐드러진 자운영처럼, 우리집에도 뭔가가 흐드러졌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집은 늘 황사바람 부는 날씨 같이 황량하고 메말랐습니다. 지난 3월에 배를 내린 병아리들이 오물오물 닭장 옆에 모여 있고 많이 먹지 못해 수척한 강아지가 빈 밥그릇만 싹싹 핥고 있고 그날 저녁에는 또 무엇으로 때거리를 해야 할지 메마른 부엌에서 맥없이 빈 그릇만 달그락거리는 언니와 동생 얼굴엔 도장밥이 허옇게 피어 있었습니다.  

 

 나는 섬진강가에 자생으로 피어난 자운영 꽃밭에 몸을 던져놓고 노래 불러봅니다. 풀 냄새 피어나는 풀밭에 누워 즐거이 즐거이 노래 불러봅니다. 즐거이 즐거이 노래 부를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습니다. 나는 그것을 내버려둡니다. 왜 즐겁게, 즐겁게 노래 부를수록, 마음은 하염없이 슬퍼지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자운영 꽃밭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요?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요? 꼭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게 쑥스러워 나는 그만 자운영꽃 무더기 속에 내 얼굴을 콕 묻어버렸습니다.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 때 우리 아이들도 자운영 꽃밭에 얼굴을 묻고 제 아이들 몰래 울까 모르겠습니다. 제 엄마 자운영 꽃밭에 얼굴 묻고 울었던 때가 생각나 저희들도 그렇게 울까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제 어미와 함께 놀았던 섬진강가에서의 한때가 못 견디게 그리워서, 그렇게 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운영 꽃밭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아름답고 그리고 너무 슬프군요.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오월 들녘으로 나가보세요. 거기 불붙는 슬픔이 당신의 가슴을 흔들어놓을 테니까요. 슬픔은 때로 저 자운영 꽃밭처럼 아름다운 것이기도 한 모양입니다그려.

 

                  공선옥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