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가다 보면 흔하게 만나는 것 중의 하나가 폐교입니다.
한때는 아이들 소리 왁자했을 운동장엔 풀만 우거지고
학교를 감싸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웬지 애잔하게 보이고
그 나무에 꽃이라도 피어 있다면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지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오늘은 그런 학교에 가 보았습니다.
보성에 있는 회천동초등학교입니다.
바로 앞에 너른 율포 앞바다를 품고 있더군요.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 뛰노는 소리 요란했겠지?
땡, 땡, 땡 수업종 치기가 무섭게
교실로 내달렸을거야
어디선가는 선생님이 치는 풍금소리에 맞춰 노랫소리가 들렸을지도 몰라
어? 저 끝 교실에서는 구구단 소리 낭랑하네
저 녀석 친구랑 싸웠구먼, 코 훌쩍이며 복도에 손 들고 선 아이
눈망울이 또랑하다.
학교는 그런 이야기를 품고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킵니다.
한때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꿈을 키우는 삶터가 되었던 곳
오늘은 잡초 우거진 모습으로
동네 할아버지들의 소일거리 게이트볼장이 되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변하는 데 학교만 제자리를 지킬 리 없겠지요?
그래도 마을에 학교는 단순히 아이들만 다니는 이상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위치부터가 마을 한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고
학교 행사는 대부분 마을 공동체 잔치로도 이어진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요.
학연이나 지연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마을의 구심점이었었는데
이제는 그 학교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네요.
아이들은 떠났는데 팽나무는 우람합니다.
380년 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라네요.
지금은 지정된 지 십여 년 흘렀으니, 어언 400년 가까이 됩니다.
세종대왕 동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 떠나고 없는데
해마다 저 벚꽃은 피겠지요?
긴 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의 호령 소리도 여전하겠지요?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마을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을 합니다.
마을에 게이트볼장을 짓는 동안,
임시로 연습하는 중이라네요.
오전엔 감자밭에 가서 일하고,
오후에는 이렇게 운동을 한답니다.
이렇게나마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할아버지 팽나무랑 이순신장군이랑 세종대왕님은 덜 외롭겠지요?
주인들 다 떠나고 없는 텅 빈 운동장가
빙 둘러 선 벚꽃만이 화사하게 봄을 뽐내고 있습니다.
- 이 글 쓰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지켜보니 이 학교 참 매력적인 곳입니다. 운동장 곳곳에 동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팽나무 아래 야외수업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도, 멋진 구령대도, 교문 입구에 자리한 학교의 연혁비도 화려합니다. 사이버 역사찾기 자료를 모으면서 동문을 찾아보니 제가 근무하는 학교보다 폐교인 이곳의 동문들이 출세한 동문이 많았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집도 금세 허물어지듯이 학생들 떠난 학교는 '나간 집'이 되어갑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학교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나 존재한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얼마전 회천동초 졸업생 한 분을 찾다가 한 반이 76명, 문씨 집성촌이 있는지 한 반에 무려 19명의 문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학교는 비록 사라졌지만, 이곳을 스쳐간 많은 이들 가슴에 그곳에서의 추억과 사랑이 존재한다면 학교는 그나마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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