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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

고흥분청문화박물관과 함께 보면 좋을 갑재 민속 전시관

2022. 7. 15.(금)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갑재 민속 전시관에 다녀왔다.

 

고흥.

면적은 서울보다 넓지만 인구 소멸 일 순위로 거론되는 지역.

애향심이나 단결력이 좋아 1박 2일로 재경 향우회를 여는 곳.

신, 송, 유, 정의 성씨가 여전히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곳.

가까이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박홍근 현 대표의 탯자리인 곳.

내가 강사로 잠시 근무하던 88년에 75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단 17개만이 있는 곳.

 

그러나 지난 3년 살아보니 정겹고 따스한 사람의 고장.

바로 고흥이다.

땅이 넓어선지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많다.

오늘은 그 중 한 곳 두원면에 있는 갑재 민속 전시관에 다녀왔다.

학교 버스를 타고 3학년 아이들의 체험학습 인솔차 왔다.

하늘은 맑지만 유난히 더운 날.

실내 에어컨이 어찌나 시원한지 7월의 더위가 저만치 물러난 날이었다.

 

이곳에서 5분쯤 가면 있는 분청문화박물관과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문학관과 

하나의 티켓으로 연계 관람이 가능했다.

분청문화박물관은 읍 단위 박물관으로 이 정도 규모를 가진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볼 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사회 교과와 연계지어 체험학습으로 참 좋은 곳이다.

 

 

 

전시관은 2층에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박물관은 갑재라는 분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졌다.

갑재.

교직에서 35년을 근무하고 현재는 이곳의 관장이자 해설사로 근무중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재를 하나하나 아끼고 수집하여 지금은 폐교된 동강면 매곡분교 자리에서

20여 년 민속관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역시 폐교된 두원서초등학교 자리인 이곳으로 옮겨 새 민속관을 개관한 지 5년이 되었다.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그 가치를 알아본 고흥군의 도움으로 

시나 도 단위의 박물관에 못지 않게 다양하게 전시해 두었다.

전시물의 내용과 깊이, 그리고 설명이나 조명 등이 세련되었다.

유리관 안에 전시된 여타의 박물관과 다르게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더 실감났다.

교육 현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고흥의 잊혀가는 민속과 생활 유물을 수집, 보전함으로써 연구 전승하고자 구 운대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8년 6월 25일 민속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근 현대를 살아온 고흥 사람들의 의식주, 놀이 문화 등 생활 문화와 농업, 어업, 축산업 등 생업과 관련된

민속유물 3천여 점을 통해 추억과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소개문에서 발췌)

 

 

키 낮은 신발장, 나무 복도, 간만에 보는 공간이라서 반가웠다.

 

번쩍이는 바닥이 생경하긴 하지만 당시의 마당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우물 모형

 

70년대 자전거도 마당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

 

모형 소가 귀엽다. 나무로 만든 소구시가 앞에 있다.

 

 

한쪽 벽면에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맏이가 동생을 돌보는 게 당연하던 시절.

 

 

광주민속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 뒤주와 다듬이, 화로 문갑 등이 보인다.

 

갑재님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 교단에 오래 계셔선지 어떤 해설사의 말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해설을 해 주셨다.

 

먹감나무 옷장과 문갑, 경대, 요강이 정겹다.

 

나 어릴 때도 이런 정지(부엌)였지. 바닥이 너무 매끈한 것만 빼고.

 

보리쌀을 삶아서 이렇게 밥바구니에 걸어두고 밥 지을 때 아래에 깔고, 쌀은 조금씩 밥 위에 올려 밥을 지었다.

 

정겨운 부엌 살림들.

 

 

각종 농업과 어업 용구

 

 

배틀

 

풍구

 

 

 

병아리집. 매나 들짐승으로부터 병아리를 지켜 주던 '어리'

 

 

오른쪽 인두에 불꽃이 튀어 옷감을 버리는 일이 생겨서 왼쪽 현재의 다리미 모양으로 변화했단다.

 

 

볏집으로 만든 도롱이. 비옷이다.

 

 

 

 

어디서 이런 자료를 모았을까.

어릴 적 교실 속으로 들어왔다.

나무 책상과 의자.

교실 한 가운데 긴 연통이 가로질러 놓여있고, 나무난로가 있던 곳. 

 

 

 

 

그곳에 풍금이 있었다.

오래 전에 풍금을 못 쳐서 곤욕을 겪었던 건 잊어버리고 나도 한 곡 연주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따라 부르지 못하더라.

왜냐?

요즘 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그 노래가 없다.

그래서....모른다.

 

 

 

 

하하.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교과서다. 반갑구나, 반가워요!

 

 

난로 위의 양은 도시락. 추억 돋네.

 

 

 

 

 

 

 

 

 

옛날 양반들은 참 게을렀나 봐. 글쎄 가래 뱉을 때 쓰던 용구랴. 조준을 잘 해야겄어.

 

남양공립보통학교 제 2회 졸업기념촬영. 나이가 많은 남학생이 보인다. 여학생은 단 두 명. 이 지역의 유지 딸이었으리라.

 

갑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전시물은 1/3 정도로 일 년에 한 번씩 바꾼다고 한다.

한 사람이 뿌린 씨앗이 실로 위대하다.

 

읍 단위 박물관이라고 믿어지지 않게 전시물의 내용이 우수했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가던 길에 들러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