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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조문

어제 급하게 조문을 다녀왔다.

사람이 산다는 게 정말 허망하다는 생각을 이번에 또 했다.

우리 엄마 주무시듯 가시고 예상 못한 죽음이 주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느꼈는데.

 

퇴근 후 간만에 한가롭게 있었다.

남편은 회식이라서, 딸도 모임에서 만난 동생들과 술 한 잔 한다기에 나 혼자였다.

넷플릭스를 틀어 볼 만한 드라마를 찾아서 미처 20분도 보지 않았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학교에 간간이 찾아오는 학부모의 전화다.

퇴근 시간이 넘어 밤 9시가 다 되어가는데 이 시간에 웬일이지?

의구심으로 전화를 받았다.

 

집이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믿기지가 않아서.

나보다 더 건강했던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그것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거다.

내 주변에서, 내가 잘 알던 사람을 두 번째로 이렇게 떠나 보냈다.

 

그분은 올해 2월까지 우리 학교에서 근무했다.

매사 깔끔하고 배려 잘 하고, 성실하여 붙잡고 싶은 분이었으나 정년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몇 달 사이 많이 지치고 힘들었나 보다.

제주도 한 달 살이에 이어 서울 아들네 집에도 다녀오고, 강릉 가서 맛난 것도 먹었다고 자랑하더니,

주변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씩씩하게 잘 사는 듯 보였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전에 고추밭 풀도 매고, 바로 그 전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회식도 했다는데

오후에 남편이 집에 오니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더란다.

그토록 허망하게 떠나 버리다니, 3녀 1남을 당차게 키워낸 그 포부는 어디 갔을까.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 너무 낯설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왔다.

비록 퇴직했지만 시장 갈 때나 관사에 도울 일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하라더니

부실한 나보다 더 먼저 떠날 거면서 약속이나 말지는.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엄마를 원망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그 아들, 그래도 학교 있는 동안 엄마가 제일 행복했었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괜히 미안했다.

 

김OO선생님!

좋은 곳으로 가세요.

이승의 인연 훨훨 털어 버리고, 자유롭게 날아가세요.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