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친구 셋과 최참판댁에 갔다.
일상이 무너진 지금, 대학 친구가 단 셋 뿐이라서 다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회를 재정비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난 지 삼년 째다
친구도 자주 만나야 대화거리도 풍부하고 정이 드는 것 같다.
아이 늦은 친구가 있는데다 그 친구가 일요일이면 교회가야 하는지라 그동안 모임을 규칙적으로 갖지 못했는데
그 친구의 작은 딸이 올해 기숙형 고등학교로 갔다.
덕분에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어쩌다 빠지게 되면 그 다음달에 연달아 두 번을 만나기도 한다.
도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살아서 이동거리는 좀 되지만 마음이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
<토지>는 박경리가 지은 장편소설이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26년에 걸쳐 지은 대하소설로 전 5부 모두 16권으로 이루어졌다.
구한말 양반 가문의 몰락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최씨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제 1부는 하동 평사리 전형적 농촌 마을에서 전통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으로 구한말 어지러운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일제로 인한 국권 상실, 봉건 가부장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경제에서 화폐 경제로의 전화 등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배경이 되면서 최참판댁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과정이 주요 사건으로 전개된다.
제2부는 공간적 배경이 간도로 옮겨 간다. 조준구의 계략으로 재산을 빼앗긴 서희가 간도 이민으로 용정촌의 한인사회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 토지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1987년 10월 24일부터 89년 8월 6일까지 엠비씨에서 방영되었다.
주인공 서희 역에는 최수지가 나온다. 연식이 좀 되는고로 그때 최수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ㅎ
토지 드라마 방영 이후 악양면 평사리는 많은 시청자와 독자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1997년 하동군 공무원이 아이엠에프 상황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종잣돈 10억을 지원받게 되어 그 돈에다
군비 30억을 투입하여 현재의 위치에 최참판댁의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 세트장에서 촬영되고 있다.
보통이 세트장이 영화나 드라마에 반짝 나온 이후 흉물이 되다 시피 하는데
하동은 지금도 연간 백만 명이 넘는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니
성공한 세트장임이 분명하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 속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방학이면 긴 장편을 하나씩 끝냈었다.
여명의 눈동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혼불, 삼국지, 람세스 세트, 퇴마록 등
세트로 읽은 게 많다.
로마인 이야기를 그때 못 읽은 것이 아쉽다.
토지는 몰입감 최고였다.
솔 출판사에서 나온 16권 짜리를 큰 맘 먹고 샀었다.
그런데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한 권, 두 권 빌려가더니 돌려주지 않아서 결국 6권까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가장 재미있는 앞부분이 없어져서 나머지 책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사할 때 버리지 못하고 다 살려서 들고 왔다.
언젠가 헌책방에 가면 기어코 짝을 맞춰 놓으리라 다짐한다.
토지는 우리 문학사에 남을 최고의 작품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삶도 문학도 존경스러운 분이다.
1926년 통영에서 출생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1946년 21살의 나이에 결혼
1950년 12월 25살에 남편과 사별
그리고는 평생을 혼자 산다.
얼마나 아까운 나이인가.
긴 세월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26년이나 한 작품에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도 어쩌면 박경리 선생님의 외로움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50대 중반인 나와 친구들은 너무 젊은 나이에 혼자된 선생님의 인생을 애닮아했다.
구석구석 잘 가꿔져 있었다.
자칫 앞은 화려하지만 굴뚝이나 집 뒤안은 어수선하기 쉬운데 눈길 닿는 모든 곳이 정갈했다.
풀꽃 하나, 꽃 한 송이도 예사로 피는 건 없었다.
그런 정원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을 이리 많이 찍는 한 우리는 젊은 거라고 한마디씩 하면서.
처음 가는 것도 아니건만 ......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지 않으랴.
평사리 들판을 바라보는 박경리 문학관 앞에서 요즘 젊은이들처럼 뒷모습을 찍어 보았다.
눈길 닿는 모든 곳이 최참판댁 땅이었다지.
햇살은 여름이지만
바람은 가을이라서
걷기 좋았다.
멀리 하동까지 간 즐거움이 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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