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햇살 좋은 날!
대학친구는 넷이다.
셋은 전남으로, 성적이 좋았던 한 친구는 광주로 발령을 받았다.
거의 날마다 뭉쳐 다녔기에 지역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광주 친구가 첫 아이를 잃어버리자 한창 아이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와 친구들은 그 친구에게 연락하기가 두려웠다.
애타는 친구 마음을 위로할 길도 몰랐을 뿐더라 아이 키우며 사는 데 너무 바쁜 나는 그 친구를 챙기지 못했다.
그 사이 친구와의 골은 깊어졌고, 친구는 딸, 아들 낳고 잘 살고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서로 연락하기는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끈끈한 사이는 되지 못했다.
또 지역청이 다르다 보니 하는 일도, 얽힌 인간관계도 달라서 만나면 금새 이야기가 동나 버리기도 했다.
남은 셋은 자주 만났다.
작년부터는 모임을 다시 재정비하여 여행 갈 돈도 모으고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만났었다.
올해 코로나로 이런 저런 모임이 다 취소되어 그조차 하지 못하다가 햇살 좋은 가을에 오랜만에 만났다.
그것도 간만에 부부동반으로.
이번 여행지는 신안 퍼플교.
오늘의 숙박지 현대호텔에서 짐을 풀고 퍼플교까지 달려가니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나는 전남 동부에 주로 살아서 목포와 신안 쪽은 잘 알지 못한다.
과거에는 섬이었던 곳이 연륙교와 연도교가 놓아지면서 목포-신안 압해도 -안좌도 -팔금도가 모두 육지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가는 퍼플교는 그 안좌도와 인근 반월도와 박지도가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 그 사이를 나무 다리로 놓은 곳이다.
육지 끝이기도 했고, 코로나로 관광객이 줄어 들어 한가로이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퍼플교의 입장료는 3천원이다.
재밌는 것이 보라색 옷을 입거나, 가방, 신발, 양산 등의 보라색을 착용하면
그 입장료를 무료로 해 준다.
이 퍼플교는 이낙연 차기 대권후보가 전남 지사로 근무할 때 전남의 상생방안을 모색한 끝에 섬이 많은 전남의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그때 전남의 6곳이 뽑혔는데 이곳은 보라색 퍼플교로 공모하여 지원받아 생긴 곳이다.
다리를 건너 박지도에 들어서니 보라 국화꽃밭이 반긴다.
박지도는 섬이 조금 좁은 반면 볼거리가 많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모두 골프장에서나 쓰는 전기 자동차가 손님을 실어 나른다.
인당 3천원인데 우리는 가을 볕이 좋아서 다리 반대편에 있는 식당까지 걸어서 갔다.
꽃밭, 컵, 접시, 길의 인도 표지판, 하다못해 쓰레기통과 전봇대도 보라색이었다.
별 거 아닌 것에도 이야기가 들어가니 새롭게 보인다.
스토리텔링이 대세인 시대.
박지도 식당에서 시킨 낙지 초무침,.
처음에는 동네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손 맛에 따라 음식맛이 차이가 많이 나서 지금은 전문 요리사를 고용한다고 했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네 시가 넘은 시간이라 시장이 반찬이 되어 주었다.
길도 보라색 길.
유난히 하늘이 좋은 날이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하늘이 일한 게 반이다.
박지도는 작지만 아기자기했고, 반월도는 꽤 커서 그냥 걸어가기에는 멀었다.
우리는 박지도에서는 섬을 한 바퀴 걸었고, 반월도는 작은 카트를 타고 돌았다.
반월도는 해넘이 풍경이 기막힌 언덕이 있었다.
걸어 갔더라면 그곳에 앉아서 차라도 한 잔 마셨을 터인데 여유가 없어서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숙박이나 식당, 카페 등의 기반 시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런 스토리텔링 섬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육지 끝 이 멀리까지 여행을 오겠는가.
그러니 생각 한 번 잘 한거지.
신안 비금도, 자은도, 암태도, 완도 소안도 등으로 해서 언젠가는 신안 여행을 한가롭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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