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5(토)
나주에서 토요일에 하는 공부를 마치고 조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후 39-17 마중 카페를 찾았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에 순천만정원 갔을 때 금목서가 무더기로 떨어진 있는 걸로 보고
나주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도 길을 나섰다.
작년에 10월 8일에 찾아갔을 때 절정의 금목서를 보았기에 이쯤이면 적당하겠다 싶어
미리 날짜에 표시를 해 뒀다.
또 금목서를 처음 본다는 블친 '연두님'과도 이곳의 금목서를 보여준다고 약속했기에 나선 길이다.
그런데.....
링링이, 타파가, 미탁이까지 퍼붓고 가더니 금목서가 지고 없다.
그 아름다운 향내까지 자취를 감췄다.
화려한 뒷모습만 보이고 있다.
대신 금목서보다는 조금 늦게 피는 은목서가 절정을 맞고 있다.
금목서는 주황의 꽃도 화려하고 향내도 강하고
하얀 색 은목서는 수수하고 향내도 그리 진하지는 않지만 은은하다.
특히 이곳의 금목서, 은목서는 다른 어느데서 보는 것보다 나무가 크고 우람하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다.
우리 학교에도, 주변의 화단에도 이맘때면 잠시 스치기만 해도 코를 훅 찌르는 금목서 향기로
행복해지지만 이렇게 큰 목서는 여기가 처음이지 싶다.
날씨도 흐린 탓에 사진도 선명하지가 않다.
이 금목서를 보러 온 건데
절정이 지나있다.
아쉽다.
작년 10월 8일의 금목서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좋은 향이 바람결따라 훅 끼친다.
이 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시면 옷에도 이 향이 배일 것 같은...
1937년에 지은 고택을 2017년에 수리하여 연극공연도 하고 장터도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서원은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어 숙박도 할 수 있다.
음식 조리는 안되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있다.
처음 지어질 당시의 느낌처럼 일본풍을 따르고 있어 특별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절구통에 가을꽃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둥둥
가을 느낌 물씬 난다.
카페 마중의 실내
SNS를 타고 유난히 젊은 층의 손님이 많더라.
창 밖의 풍경.
소풍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있고
세련된 실내는 사진을 찍으면 더 아름답다.
창 밖은 나주 향교
은행나무가 물들면 꼭 다시 오리라.
그리하여 오늘 금목서 저 버린 걸 상쇄하리라.
나주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983년 중앙집권 정책의 하나로 전국을 12목으로 나눌 때 나주목이 설치되었는데
당시 나주목은 무안, 담양, 곡성, 낙안, 남평군과 회진 반남, 창평, 장산, 진원, 화순 등
11개의 속현을 다스렸다. 즉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부와 중부권을 관찰했다.
북한산과 한강이 배산임수를 이루는 햔양의 지형처럼 금성산과 영산강이 나주에는 있어
'작은 한양'이라고도 불리었다 한다.
인구로 보면 전국에서 5번째로 꼽힐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되고 이듬해 전국을 13도로 나누고, 전남도청이 광주에 설치될 때까지
913년 동안 전라도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이었다 한다.
그러기에 나주를 '천년 고도 목사고을'이라 부르고 있다.
창밖으로 모이는 나주향교는 공자를 중심으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으로
현존하는 대성전 중 규모나 격식면에서 유교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님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 전한다.
따뜻한 청귤차 한 잔으로 오늘 구경못한 걸 달랬다.
금목서도 저 버렸고, 광주 문상도 가야 해서 마음 바쁜 우리는 저 차만 마시고 바로 일어서 버렸다.
여러모로 아까운 날이다.
거기까지 가서 금목서를 못 본 것도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 것도...
은행잎에 노랗게 물이 들고 그 은행잎 떨어져 노란 꽃길을 만들 때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여운이 남아야 다시 찾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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