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 스플리트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295년부터 궁전을 짓기 시작하여 퇴위한 305년에 완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311년에 생을 마감했고, 퇴위 후 이 궁전에서 보낸 날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 그는 3세기 동안 20명이상 황제가 바뀔 만큼 불안한 로마의 정세를 수습하고 통치권을 강화했다. 군제, 세제, 화폐제도의 개혁을 단행하면서 국사를 돌보았지만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하다. 303년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한 후 교회와 성전을 파괴했으며, 저항하는 사제와 주교들을 가차없이 탄압했다. 자료에 따르면 2년 동안 약 3000~4000명의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스로 제위를 물러준 유일한 로마의 황제다.
스플리트 항을 마주하고 있는 궁전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궁전의 규모는 동서 215미터, 남북 181미터 이며, 궁전을 둘러싼 성벽의 높이는 15미터, 총면적은 3만 제곱미터다. 궁전의 대부분은 스필리트 앞 바다에 있는 브라치 섬에서 가져온 석회암과 이탈리아, 그리스에서 수입한 대리석, 화강암을 사용했다. 거기에 이집트에서 스핑크스를 가져와 장식했다. 궁전의 3면은 육지를, 한 면은 바다를 향해 있고, 동서남북에 궁전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다. 각 출구는 은의 문(동), 철의 문(서), 청동의 문(남), 황금의 문(북)으로 불린다. 궁전 내부는 일직선으로 나 있는 동문과 서문을 중심으로 바다를 향해 전망이 좋은 남쪽은 황제와 황실 가족의 아파트와 신전이, 북쪽은 시종과 군인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돼 있다.
현재는 일반인들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열주 광장, 주피터 신전, 황제의 아파트와 지하 궁전 홀, 성 돔니우스 대성당 등이 유적지도 남아 있다. 궁전안의 미로 같은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유럽과 아시와, 아프리카를 지배한 로마 황제의 호화로운 궁전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궁전을 돌아보면 로마의 저력이 느껴질 것이다.(프렌즈 크로아티아에서 발췌)
몹시 더운 날이었다.
유럽이 덥다는 말을 듣고는 왔지만 해도 더운 날이었다.
다행이라면 습도는 평균 40도라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그나마 좀 낫다는 사실.
그럼에도 거리에는 인파가 넘쳤다.
다른 여행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시끄러운 중국 사람도 없었고,
우리나라 사람도 가장 적은 듯 보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고대에는 황제의 궁으로서의 장엄함을 보여주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 세계의 관광객이 드나들고,
작은 미로 사이사이에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민들의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좁은 골목 사이에는 음식 냄새와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이곳이 과연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문화재가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복작대고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이리 저리 따라다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크로아티아 단독 상품이라 자유시간을 주는데도 갈 데가 없다.
에어컨이 틀어진 가게를 찾기도 힘들었다.
인솔자가 설명하는 옆에서 한국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
밖에 모르던 현지 가이드가 나로드니 광장에 와서 자신은 저 곳 3층에 산다고 소개를 한다.
자유시간을 주자 마자 우리가 간 곳은 슈퍼마켓(여기서는 SPAA)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광장 그늘에 앉아있는 것으로 자유시간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더워서 어딘가를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꽃보다 누나'에 나왔던 김자옥씨가 이 골목의 구두점에서 붉은 색 구두를 사느라고
이승기를 한 시간이나 밖에 세워뒀었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
김자옥씨는 그 구두를 몇 번이나 신고 하늘로 돌아갔을까?
열주 광장( Peristil)
스플리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천시장이 있는 은의문(동)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궁전 안에서 제일 큰 광장이다. 황제가 회의나 행사 등을 주재한 장소로 궁전의 중심이기도 하다. 12개의 붉은 화강암 기둥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유적지들이 흩어져 있어 이정표 구실을 한다.
나로드니 광장(Trg Narodni)
철의 문(서)과 연결된 광장으로 베네치아,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즐비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Grgur Ninski)
황금의 문(북)을 나가면 바로 보이는 높이 4.5미터의 거대한 동상. 10세기에 대주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은 크로아티아인이 모국어로 에배를 볼 수 있도록 투쟁한 인물로, 크로아티아에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9년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청동으로 만든 동상은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와 크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동상의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따라 엄지발가락을 반짝반짝 윤이 나있다.
우리도 긴 줄을 따라 기다리며 소원을 빌었다.
참으로 특이한 유적지였다.
과거에는 황제의 궁전이었고, 중세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든든한 요새였으며
현재는 사람들의 주거공간이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음식냄새를 풍기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가게가 즐비한 이곳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집은 곧 허물어진다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가 1,700년이 지난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온기 때문이었을까?
참으로 특이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스플리트 관광의 시작과 끝이라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끝으로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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