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도 없고 모처럼 봄햇살로 따사로운 날
벌교 부용산에 올랐다.
아니 부용산 전체는 아니고 팔각정자까지만 가는 한가한 길이다.
부용산은 벌교 한가운데 있는 낮은 산이다.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이 날 아이들과 함께
벌교읍사무소 옆의 나무 계단으로 올랐다.
부용산
- 노래말: 박기동, 곡: 안성현, 노래: 안치환 -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은 박기동씨가 1947년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에 목포 항도여중에서 함께 재직하던 안성현(월북<엄마야 누나야> 작곡가)이 1948년 곡을 붙인 노래다. 수년 전,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남재희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남도에서 <부용산> 모르면 간첩”이라며 열창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노래 <부용산>은 해방과 전쟁 뒤 폐허라는 당시 상황과 어우러져 당대의 최대 히트곡이 됐지만 작곡가 안성현이 월북하면서 지하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자 이 노래도 공식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가슴과 가슴속에서만 불려지게 되었다.
(* 이상 자료 출처: http://www.redarrow.com.ne.kr/music/bu.htm)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높다란 충혼탑이 있고 좌우로 체육공원이 있고
운동기구가 늘어서있다.
안치환의 노래로 유명한 그 부용산이 바로 이곳이다.
처연한 곡조에 가사도 애잔한 곡이다.
이 날은 마침 두 분의 아주머니가 잔디 사이에 돋아논 풀을 매는 중이었다.
충혼탑 오른쪽에 예초기를 돌리는 아저씨도 보였다.
봄은 봄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 곳 팔각정자까지만.
길은 잘 닦여있다
높지 않은 산이기에 정상까지도 금방 오를 수 있다.
팔각정에서 바라 본 벌교 읍내.
멀리 순천과 목포를 잇는 남해고속도로에 놓인 벌교대교가 보이고
그 아래 바다가 펼쳐져있다.
오래 전 일제시대때부터 포구의 역할을 했던 곳.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던 곳.
옹기종기 벌교 읍내 모습이 정겹다.
얼마 전까지는 벚꽃길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 흔적만 남기도 다 사라져버린 벚꽃.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연초록 나무 이파리가 사랑스럽다.
수지랑 닮았나요?
실제의 수지보다 훨씬 못 생겼네. ㅋㅋ
부용산 팔각정에서 돌아 나오면
벌교 <월곡 영화마을>이 나온다.
벌교는 오래 된 도시, 여수나 부산처럼 산비탈의 지형을 이용하여 집이 지어져 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누가 사는지 다 보일 만큼 낮은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벌교읍에 위치한 낙후되고 열악한 주거지역이었던 월곡마을의 낡은 담벼락에 영화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를 조성하여 마을 주민의 삶 속에 문화디자인을 도입하였다. 관내 초등 학생들의 작품을 활용한 '꿈그림 벽화'가 담벼락을 함께 채워 나가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나무벤치, 각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최근에는 전국 대학생 벽화대회가 개최되어 더욱 화려한 벽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벌교 월곡 영화골> 표지판에서 인용
여긴 보성여관이다.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나온다.
지금도 숙박을 할 수도 있고, 입구의 카페에서 차를 마실 수도 있다.
그냥 구경만 하려면 입장료 1,000원을 내지만
차를 마시면 무료이다.
커피나 에이드 종류는 4천원.
카페안의 한 쪽에는 오래된 잡지나 초등학교 교과서 등이 놓여있어 시간이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도 할 수 있다.
<알쓸신잡> 벌교편에서 계단 위 탁자에서 음식을 먹으며
유시민과 김영하, 황교익 등이 태백산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 자리이다.
TV에서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왔지만 실제 보성여관에서는 차만 팔지
음식은 팔지 않는다.
걸2층은 이렇게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다.
전형적인 일제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최근에 다시 손 본 것이다.
우리 외에는 사람이 없어서 전세낸 아이들이 세상 편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보성여관 매니저하던 분이 판소리 한 대목도 들려주고 했었는데
올해 물어보니 그사이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했을건데 아쉽다.
ㅁ자의 건물에 둘러싸여있는 보성여관 뜰이다.
꽃자주 영산홍이 화사하다.
아이들이 복숭아에이드를 마시는 사이 나도 커피를 마시면서 목마름을 씻는다.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좁은 동네지만 구석구석 구경할 곳 많은 이곳은 전라도 보성 벌교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도방죽'이 있는 곳.
'태백산맥문학관'과 소설 속 현부자집과 김범우의 집이 있는 곳.
보성여관과 금융조합, 부용산이 있는 곳.
꼬막된장국, 꼬막탕수육, 꼬막무침, 꼬막전 등의 꼬막음식 1번지.
바로 벌교이다.
보성군에는 읍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보성읍.
하나는 벌교읍.
두 곳은 정서도 생활환경도 많이 다르다.
그도 그럴것이 두 곳은 승용차로 달려도 30분이 넘게 걸려 벌교에서는 보성읍 가는 것보다
순천시 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당연하게도 생활권도 보성읍은 광주나 화순권,
벌교는 순천권이라 지방색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 벌교는 엄연히 보성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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