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화순으로 출장가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내 친구, 요즘 전화하기도 받기도 힘들 지경으로 바쁜 친구인데 웬일?
알고보니 케익을 사 두었으니 가져다 먹으랜다.
오랫동안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는데 얼마 전부터 대형 마트 계산원으로 취직중이다.
집 가까운 동네 마트인데,
아는 사람 숱하게 많을 터인데....
무엇보다 손에 익지 않은 막일인데....
그렇게 생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씩씩하게 잘 다닌다.
대학 2학년 때 나랑 자취한 이후 지금껏 내 단짝으로 있는 그녀,
여리고 마음 따스하고, 남의 시선 많이 의식하던 친구였는데,
내게는 그녀의 그런 씩씩함이 낯설다.
어린이집 3살짜리 꼬맹이 4명을 보는 일이 오랫동안 해 오던 직업이었는데
과감히 그 일을 포기했다.
칭얼거리는 아이 안아주기,
토닥거려 재우기
어르고 달래 밥 먹이기,
무엇보다 젊은 엄마들의 말도 안되는 갑질과 트집에 지쳤나보다.
퇴근해서 사우나에 있다가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너무 늦어 내일 전화해야지 했단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원장이 안절부절.
요지인 즉슨 어젯밤 친구한테 전화하니 안받는다고 원장한테 전화한 학부모,
아이의 엉덩이에 손바닥만한 퍼런 멍이 들어 있더라고,
행여 어린이집 담임샘이 때려서 생긴 거 아니냐고.
아침 일찍 병원 문 열면 병원 들렀다 어린이집 간다고 전하랬다며
CC-TV돌려 보자며 길길이 뛰더란다.
그 말 듣고 친구도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아이가 갔다는 병원으로 달려갔고,
뒤늦게 의사의 진단 마치고 온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에 원장도 내 친구도 기함했다고 한다.
엉덩이의 손바닥만한 푸른 멍은 '몽고반점'이었다고......
아이의 엉덩이에 손톱만큼도 아니고,
어른 손바닥만한 몽고반점이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
그래놓고는 앞뒤 따져묻지도 않고 어린이집 교사를 먼저 잡는 일이 다반사다.
교사에 대한 믿음이 파리눈꼽만큼도 없는 세상에서
내 친구 익숙한 세상을 과감히 뛰쳐나와 마트에서 그 고생중이다.
그럼에도 그저 반복되는 일만 하다보니
눈치 볼 일도
신경쓸 일도 없어
마음은 편하다고 웃는다.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저녁먹는 오후4시부터 한 시간을 뺀
하루 8시간을 일한다.
겨울임에도 문이 훤하게 열어진 계산대 가운데 칸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하루종일 서서 일한 후유증으로 다리에 쥐가 나서
한밤에 병원 응급실까지 다녀갔단다.
그리 힘들게 번 돈으로 케익을 샀다고 가져다 먹으랜다.
아이들 어렸을 적에 한 두 번 샀었나....
기억도 바랜 크리스마스 케익
종교활동을 하지않는 내게는 그저 하루 잘 쉬는 휴일일 뿐인데
내 친구 어찌 나를 생각했을꼬.
내 친구 취직한 이후는 아무때고 전화해서 함께 하던 밤운동도
마음 허전할 때 마시던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어져 버렸다.
휴일이라고는 달랑 월요일 하루.
밀린 집안일에 사우나 한 번 다녀오면 짧은 겨울해가 다 가버린다는데....
아까워서 어찌 먹나.
내 친구의 따스함에 크리스마스 밤이 훈훈하다.
'일상의 풍경 > 일상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남대에서의 겨울 오후 (0) | 2019.01.13 |
---|---|
우리 학교의 얼굴 없는 천사 (0) | 2019.01.02 |
꽃길만 걸어요 (0) | 2018.12.23 |
김동춘 교수의 민주시민교육강연을 듣고 (0) | 2018.12.15 |
[잠꾸러기라고 놀리지 말아요] 그림책/ 이금안 작/장수하늘소 출판사 (0) | 2018.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