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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일상의 풍경

우리 학교의 얼굴 없는 천사

 지난 해(벌써 지난 해가 되었네.) 학교에 택배 두 박스가 도착했다.

여러 사람 근무하는 곳이고, 방과후운영 물품, 유치원 학용품이야 청소용품이야

본 청에서의 이런 저런 책자로 연말이면 학교도 택배가 넘친다.

검수를 거친 후 며칠 후면 이런 저런 물건은 주인에게 돌아가기 마련인데

이 상자는 주인이 없는 지 여러 날 교무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누가 보낸 물건인지....

잘 못 배달된 건가 둘러보았지만

택배 상자에는 또렷하게 우리 학교 이름이  적혀있었다.


"혹시 그 분 아닐까요? 매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보내는 분이 계셨어요."


이 학교 오래 근무한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결국 보낸 곳으로 전화를 해서 알아본 결과 그 분이 맞았다.

얼굴 없는 천사.

연말이면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 소식이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올해만 해도 세종시에는 점심값을 아껴 모은 돈 29만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람이 있고,

광주에서는 1톤트럭에 본인이 손수 농사 지은 쌀 400kg(20가마)을 기부하고도

이름을 밝히기 거절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이런 분들의 소식이 그래도 세상은 살 만 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우리 학교.

읍 지역에서 10분쯤 벗어난 곳에 있는 농촌의 작은 학교이다.

작년까지 내가 근무했던 큰 학교에 가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학교이다.

어느 학교나 나름의 학교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여긴 동문회가 참 끈끈한 곳이다.

지금도 학교에 어려운 점이 생기면 교육청에 말하기보다

동문회에 말하는 것이 일추진이 빠를 정도로 학교일에 협조적인 분들이 많다.


 

 

 


그 동문 중 한 분이 후배들을 위해 매년 이렇게 학용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부가 부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잘 난 사람은 잘 난대로

못 난 사람은 먹고 사는 데 바빠서 주위를 둘러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후배들을 위해 정성을 모으는 작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내가 잘 아는 한 언니는 본인의 모교 광주산수초등학교에 백만 원을 보냈었다.

당시 그곳에 근무하는 내 동생을 통해서.

왜 그러냐는 내 물음에 그 언니 쿨하게 대답했다.

"그냥..... 오래 전 그 학교 다닐 때 나 행복했거든. 후배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이 한 끼 식사를 하거나, 체육복을 사 입거나, 그냥 알아서 쓰시라고."

어떤 돈인지, 누가 보낸 것인지, 진정 써도 되는 돈인지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오히려 곤혹스러워하셨다.

 

 

우리 학교 얼굴 없는 천사님!

고맙습니다.

이런 거 받을 때마다 모교에 4년이나 근무했으면서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